[장병린] ( 章炳麟)
1869~1936. 청조 말기 중화민국 초의 혁명사상가로서 혁명 후에는 '국학대사라 칭하여졌다. 고증학에서 강유위 등의 개혁주의로 전향하였으며 더욱이 배청민족혁명 사상으로 나아갔다. 구국을 체제변혁에서 구하지 않고 민족의 주체성 회복,‘광복’에서 구하여“자기에 의존하며 이것도 모든 개개인의 자각이 근본이라고 하여‘혁명도덕설’을 제창하였다. 일련의 혁명론은 그가 출옥 후 도일하여 주재한 중국혁명 동맹회의 『민보(民報)』에 실렸지만, 이러한 것들은 유식론(唯識論) 등의 불교 교리에 의해서 서술된 것으로 철저하게 부정적이며 이민족 지배, 권력 지배, 금력 지배를 거부하였는데, 그 결론은 무세계(無世界)를 전망하는‘오무론(五無論)’에 이르는 무생주의(無生主義)였다. 그의 국수주의는 처음에는 민족의 자기 확인이었지만 중화민국 혁명으로의 정치적 방향을 상실하고 원래의 고증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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