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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예술사회학적 연구] ()

예술의 사회학적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계로 하여 다소 그 양상을 달리한다. 대전 전에는 예술의 생산과 수용에 미치는 사회적 규정작용을 해명하는 것이 주된 이론적 관심사였다. 그것에 비해 대전 이후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예술이 발휘하는 다양한 양상의 사회적 기능이 학문적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의 구별에 관계없이 기술의 발달이 물질적 생산량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교환되는 정보량도 비약적으로 증대시키고, 마침내는 인간관계의 사회적 기초를 변혁시킴으로써 선진국들에 점차로 대중사회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즉, 기술문명이 낳은 사회적 모순들에 직면하여 전후 미학은 좋든 싫든 그것과는 관계없이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재점검할 필요에 다가서게 된 것이다.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의 진보가 예술 자체의 성격을 변질시켜, 예를 들면 대중예술(mass art)같은 것이 사회생활 속에서 점차로 영향력을 강화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예술사회학을 시대의 긴급한 임무로 간주하는 일부 미학자들의 동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의 사회학적 연구는 처음부터 그 대상과 방법이 꽤나 다양하고 넓었는데, 이것은 몇 가지로 크게 나누어보면, (1) 전문 과학의 예술사회학, (2) 예술에 대한 사회철학적 고찰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긍정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도 판별해야만 하지만,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위의(2)로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1) 전문과학으로서의 예술사회학

미렌도르프(Marta Mierendorff)는 토스트(Heinrich Tost)와의 공저『예술사회학 입문』(Einführung in die Kunstsoziologie,1957)에서 예술의 사회학적 기능을 연구하는 전문과학의 개설을 시도하였다. 그들이 원칙적으로 인식했던 사항 중에 중요한 것을 들어보면 - 예술은 표현ㆍ전달(communication)ㆍ사회통합의 기본적 수단으로서 사회에 작용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산출해야 하고 체험해야 하며 해석하는 능력을 잠재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동시대의 작품은 가끔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게 되어 예술과 사회의 상호전달이 차단되기도 하지만, 창의로 가득한 예술은 결코 문화지체(cultral lag)에 빠지지 않는다. 예술양식 가운데에는 사회의 연속성과 전체성이 나타나 있는데, 예술창조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여러 가지 문화유형(Kulturmuster)이며, 문화유형은 사회 속에서의 예술과 예술가의 위치를 결정한다.
미렌도르프의 견해에 따르면, 미학도 학문적인 예술비평과 함께 오늘날에 와서는 더 이상 예술평가에 필요한 적절한 개념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널리스트가 쓴 예술시평도 집단적 이해에 영향을 받는 마당에 하물며 이데올로기적인 예술해석이야 어차피 일면적이고 편파적이라는 것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단, 예술사회학은 상술한 것과 같은 원칙적 인식에 의해서 이러한 결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 결과, 미적 교육을 정당하게 조성하고, 예술에 의한 전달을 존중하여 조성된 단체 활동에 이론적 기초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전문 사회학의 방법을 육성하는 온상이 되었던 것은 일찍이 비제(Leopold von Wiese und Kaiserswaldau,1876~1945)와 피어칸트(Alfred Vier kandt, 1867~1953)등이 개척한 형식사회학과 관계이론(Beziehungslehre)이다. 이러한 방법의 관점에서 예술현상에 접근할 때는 예술에서 인간상호 간의 행동이 총체적으로 예술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여건이 된다.
모든 종류의 사회적 행동의 변화가 신속하게 예술에 반향된다는 것을 즉 사회변동에 대한 예술의 특이한 민감성을 역설한 사람은 프랑카스텔이다. 그는『회화와 사회』(Peinture et société)에서 회화적 공간형성과 그 쇠퇴가 문화의 그것과 불가분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그 밖에도 전문과학의 자각에 의하여 경험과학적 방법을 구사했던 에스카르피(Pierre Escarpit,1918~)와 퓌겐(Hans Norbert Fügen)등은 문예사회학에서, 질버만은 음악사회학 영역에서, 그리고 장뒤비뇨(Jean Duvignaud)는 연극사회학 분야에서 각기 대표적인 업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분야의 성과를 모두 총괄하여 국제적 규모에서 통합하려는 기본적인 노작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예술사회학이 사례연구를 통해 법칙들을 귀납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예술에 의한 사회통제(socil control)의 입안이라는 실천 활동에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 이론적 가능성은 마침내 로스(Edward A. Ross,1866~1951)와 귀르비치(Georges Gurvich ,1894~1965)에 의해 지적되기에 이르렀는데, 그 후 미국 사회학, 특히 파슨즈(Talcott Parsons, 1902~)의 사회체계 이론의 영향을 받은 와트슨(Bruce Watson,1929~)은『예술ㆍ예술가ㆍ사회통제』(Kunst Künstler und soziale kontrolle,1961)에서 예술의 제도적 본질에서 사회통제를 논하고 과거에 나타났던 그 유형을 동태적 예술사회학의 기본범주로 정착시키려고 했다. 또한 그것과 직접 관계는 없지만 전후 서독에서는 나치즘에 대한 관계문헌 정리가 진척되고 있으며, 나치즘에서 취해진 예술정책의 사회학적 해명도 진행되고 있다.

2)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미학에 광대한 시야를 열어놓은 사람은 루카치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칸트 미학에, 마지막에는 헤겔 미학에 의거하였다. 특히 신칸트학파적인 소양이 엿보이는 독창적 고찰『미학에서 주관ㆍ객관의 관계』(Die Subjekt-Object-Bezie-hung in der Ästhetik, in: Logos Bd.7, 1917~18 )를 발표한 이외에도, 헤겔학파의 역사철학을 배경으로『소설의 이론』(Theorie des Romans,1920)을 저술하여 미학과 문예학의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실천에 정진하면서 수년간을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던 루카치는 예전엔 일단 방기했던 체계적 미학 수립계획을 새롭게 구상하고 그 범주를 헤겔미학에서 구하였다. 그러나 헤겔 미학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것을 계승하려고 한다면, 단지 마르크스ㆍ엥겔스ㆍ레닌 등의 저작에 단편적으로 드러나 있는 미학적 견해를 재편하거나〔이것에 대해서는 리프쉬츠(Lifschitz)가 편집한K. Marx und F. Engels : Über nst und Literatur,1951을 참조〕혹은 그것을 해설하거나 주석을 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가 마르크스적 방법으로 현실을 편견없이 관찰하고 마르크스주의미학의 체계를 반드시 창조적으로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루카치 자신은 이러한 태도를 “현실에 대한 충실함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충실함”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유물론자인 루카치는 관념론에 기초한 과거의 미학설을 기본으로 거부한 반면에, 헤겔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ㆍ괴테ㆍ기타 뛰어난 미학자들의 견해에는 찬의를 표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자신 주장의 자양분으로 섭취하였다. 루카치의 유물 변증법은 사물에 대한 정의 (Definition)를 시종일관 고정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잠정적이며 보완을 요하는 것으로서의 규정작용(Bestimmung)을 중시한다. 따라서 문제 전개의 상황과 차원이 변화하면 동일 대상에 대한 규정도 보강되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체계적 연관이 점차 명료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미학은 확실히 체계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이면서도, 실제 서술은 때때로 발생론적인 외관을 띠게 되어 소위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내적 통일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루카치의 주저서인 『미학ㆍ제1부』(Ästhetik,Erster Tell, 2 Bde,1963)는 ‘인간의 정신활동 틀 내에서 미적 원리가 차지하는 위치, 즉 생산과 수용의 양면에 걸쳐있는 미적 태도(미의식)의 특징과 미적 형상의 범주구조 등을「미적인 것의 고유성」(Die Eigenart des Ästhetischen)이라는 부제 아래 다루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와 예술은 현실반영(Widerspiegelung)의 독자적인 하나의 형태이고, 그 순수한 형태는 과학적인 현실반영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양자는 모두 대관화 되어 일상생활에서 일단 벗어나 그 성과가 재차 일상생활로 환원되어 이것에 반작용을 가한다. 양자가 이러한 한에 있어서는 서로가 유사한 과정을 경과하지만, 그 각각의 대관화 작용이 의거하고 있는 원리 자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말하자면 예술은-주술이나 종교와 함께-신인동형동성화( Anthropomorphisierung)의 원리에 따라 대관화되고, 반면에 과학은 탈신인동형동성화(Desanthropomorphisierung의 원리에 따라 일반화되는 것이다. 확실히 이들 원리는 정반대이지만, 이러한 원리들에 따르는 모든 활동이 반드시 경직된 형식적 대립에 함몰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상호 간에 변증법적 운동이 발생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술적 반영에서는 내용이 형식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지만 형식은 감정환기(Evokation)의 기능을 갖는다. 더욱이 이 기능은 그 근원을 영혼을 불러일으키는 주술에 두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반영을 발생적으로 본다면, 우선 그 추상적 형식인 리듬ㆍ균제ㆍ균형 등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여 미를 특징짓는 가장 일반적인 제약으로 성립한다. 그것이 구성하는 특수한 미적 형상이 장식이다. 다음으로 미적 반영의 더 구체적인 내용은 모방작용으로 풍부하게 된다. 이 말은 루카치에게는 유물론적 인식론인 반영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미적인 것이 성립하는 데 이르는 복잡한 회로를 총칭하는 것이다. 모방은 발생적으로 주술과 예술에 공통되는 것이지만, 주술 및 - 그 발전 형태인 - 종교가 반영체계에 일종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여하고 이것을 향한 신앙을 강화시킨 것임에 반하여, 예술은 현실의 모방인 반영상을 바로 그 자체로 완결된 것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따라서 고도로 발전한 예술에서는 예술적 모방이 반영상에서 고유한 세계성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하여 우리는 자신이 사회적 존재인 이유를 한층 명료하게 자각한다. 이러한 예술작품에 고유한 세계가 구체적으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예술 장르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하는 동질적 매개자(homogenes Medium)에 의해 작품이 규정되어야만 한다.〔예를 들면 미술의 동질적 매개는 순수시각성이다.〕또한 이와 같은 자기 완결적 전체성을 담보하는 작품에 대하여 수용자는 더 이상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전체적 인간임을 그만두고, 좀 더 지속적이고 실천목적에서 멀리 떨어진 특수한 집중현상 속에서 인간 전체(der mensch ganz)로 된다. 또한 예술수용체험이 일상생활에 주는 진동 작용에 대하여 루카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카타르시스 개념을 보다 일반적인 범주로 확대 해석하여 질적으로 새로운 대상과 연관의 지각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적 반영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주관성의 변증법에 의해 예술은 인류가 자기의식을 최적ㆍ지고(至高)로 표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루카치는 확신한다. 그런데 루카치는 미적 형상과 예술의 발생기반인 일상생활 자체에 대해서도 상세한 분석을 가하고, 이것과 관련하여 그는 미와 예술의 피안성(Disseitigkeit)을 강조하고 있다. 즉, 초월자를 향해 나아가는 의식의 움직임을 피안성을 향하도록 전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예술작품의 객관적 범주 구조이며, 나아가 일상생활에서는 피할 수가 없는 문화작용(Fetischisierung)에서 벗어나 진정한 현실을 노정시켜 궁극적으로는 종교로부터의 예술의 해방을 보증한다.
미적 반영의 본질은 사회적ㆍ역사적 차원에서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개인적ㆍ심리학적인 문제에도 존재한다. 루카치는 생리ㆍ심리학자인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1936)의 조건반사설에 의거하면서도 한편, 이것을 수정하여 ‘신호계 1’(조건반사)과 ‘신호계2’(언어)의 중간에 새로운 ‘신호계1’를 설정하고, 이것이 우리의 경험을 확장하여 전형(Typik)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길을 터 주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전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범주들이 미적 반영에 적합하고, 나아가서는 장르에 따라 변형되어야만 한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보면 일반자(一者般)와 개개의 사물이 실재적ㆍ유기적으로 통일된 것인 특수성(besonderheit)의 범주가 미의 본질적 구조의 중심에 설정된다〔루카치가 타계함으로써 그의 방대한 저서인 『미학』은 완결되지 못했는데, 제2부에서는 예술작품에 대하여 그 전체와 부분의 특수 구조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제3부에서는 사회적ㆍ역사적 현상인 예술이 상세히 논술될 예정이었다〕.
루카치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던 골드만(Lucien Goldmann,1913~72)은『소설 사회학을 위하여』(Pour une sociologie du roman,1964)에서,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가 그것을 배태했던 근대 개인주의사회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고 간주하였다. 또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루카치의 소설이론 특히 그 유형론적 고찰과 더불어 이것과 내용이 가까운 자라르(Rene Girard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 ue, 1961)의 가치론적 고찰을 가지고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스스로도 여러 종류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또한 피셔(Ernst Fischer, 1899~1072)는 사회상황은 변하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를 표현하려는 인간성의 계기가 예술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승인하고,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에서 ‘잃어버린 현실’을 회복하여 그 전체적인 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블가결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르페브르(Henri Lefevre, 1901~) 역시 인간의 전체성을 중시하였지만, 그는 예술을 소외현상의 대립점에 두고 있다. 예술의 각 전성기는 예술이 생활 표현의 전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항상 특권적인 환경 속에 출현하기 때문에, 그 경우에는 소외되지 않은 인간을 등장시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술은 유물사관 공식에서 일탈하여 토대로부터 규정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블로흐(Ernst Bloch, 1855~1977)는 체계적 미학을 하나로 엮어서 저술하지는 않았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섬세한 감수성은 여러 종류의 논문ㆍ저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래 그의 사색에 잠재되어 있는 유태교적ㆍ그리스도교적 메시아주의의 경향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에 대한 깊은 실망으로 바뀌고 증폭되어 마르크스철학에 대한 특이한 해석을 낳기에 이르렀다. 예술은 바로 그 핵심의 한 부분이다.
예술에 관하여 다방면에 걸쳐 언급하고 있는 블로흐 미학에서 주축을 이루는 사상은 예술의 유토피아적 기능(utopische Funktion)이다. 이 경우에 유토피아는 단순히 정치학적 범주가 아니라 사건의 과정을 추월하는 것(Überholung)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문화적 예견작용이다. 유토피아를 갖는 것은 인간인 것과 마찬가지로 블로흐는 그 주관적 형식을 ‘학식으로 가득 찬 희망’(docta spes)이라고 부른다. 정의로운 세계와 인간을 지향하여 이 세계를 초월하는 것은 모든 창조적 노동의 특권이며, 예술은 그러한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위대한 예술은 위대한 철학과 마찬가지로 유토피아적 성격을 갖고 있다. 예술의 유토피아적 성격의 기초가 되는 것은 ‘아직-아님’(Das Noch-Nich)의 존재론이다. 그것은 가능성 속에 있는 것으로서 장래의 모든 것이며, 또한 새로운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나아가는『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1954~59)를 주장한 블로흐는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여, 정관(靜觀)태도를 존중한 칸트나 쇼펜하우어 이래의 전통에 반대하고 오히려 희망에 의해 유발된 의지를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술의 노동 성격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것을 세계변혁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과제와 분리하여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술체험에서는 단순히 미래성에 중점을 두는 것만이 아니라 말하자면 미적 시간의 종말론적 의의가 드러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한 현재는 ‘아직-아님’의 실현 또는 유토피아의 실현 이전 단계에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토피아 기능은 이미 계급과 시대를 뛰어넘어 ‘단순한 이데올로기로부터 흘러넘친 과잉물’이라는 성질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헤겔학파가 해석했던 ‘이념의 감성적 현현’이라고 볼 수 없으며, 유토피아적으로 미결상태에 있는 것과 관계하는 선험가상(Vor-Schein)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흐의 미학은 그 근저에 일종의 종교적 감각을 내포하고 있어 그 논술에는 신학적 사색의 색채가 두드러지는데, 여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유토피아 기능의 초월 작용은 종교가 본래 갖추고 있는 수직방향으로 초월 작용과는 구별하여 생각하는 것이 옳다. 또한 루카치가 예술을 반영 개념에서 파악하고 고전적으로 평가된 예술적 유산의 계승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인류의 자기의식의 표현인 리얼리즘에서 가치규준을 구했던 것에 비하면, 블로흐는 세계에 대한 충실함과 그것에서 흘러넘친 과잉과의 사이에 있는 적정한 변증법을 평가규준으로 간주하여 표현주의에 가까운 감이 있다. 또한 음악적인 것에도 이해가 깊은 점은 음악에 비교적 이해가 얕았던 루카치와 대조적이다.
다수의 단편적 평론으로 현대예술의 기조를 날카롭게 도려냈던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인 벤야민(WalterBenjamin,1892~1940)의 이름은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의 호오크하이머(Max Horkheimer,1895~1973)와 아도르노 등과 함께 명기되어야만 한다. 벤야민 미학의 중심은 표현 형식의 사회 철학적 분석에 있다. 그의 대표적 논문인 『복제기술 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1936)의 의도는 마르크스가 생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분석과 함께, 현대 자본주의적 생산조건에서의 예술의 발전 경향을 도출하여 예술정책에 대한 혁명적 요구를 정식화하는 것에 두었다.
그런데 복제 기술은 그 이전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사진과 영화의 출현을 계기로 질적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복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여 종래 예술의 효과를 일변시켰을 뿐만 아니라, 복제기술 자체가 새로운 권리를 요구하여 예술현상 가운데로 침투해 들어갔다. 기술적 복제가 성공한다면 원작의 일회성은 상실되어버리고 말 것이며, 원작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장소와 상황에서조차 복제품은 참으로 쉽게 놓일 수 있게 된다. 벤야민은 이러한 경우에 상실되어가는 것을 일괄적으로 아우라(Aura)라 부르고, 아우라 소멸로 나타나는 효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이로 인해 전통은 사라져가고 종래에는 볼 수 없었던 시사성(Aktualität)이 출현하게 된다. 더욱이 이 예술적ㆍ문화적 과정은 대중사회의 등장과 결합된 것이다. 아우라의 붕괴를 자연적 및 사회적으로 제약된 지각 매체의 변화로 볼 경우, 이것이야말로 현대 지각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에는 복제될 것을 처음부터 계산에 넣은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한 복제예술에서는 종래의 예배가치(Kultwert)에가 아니라, 그 대극인 전시가치(Ausstellungswert)에 역점이 두어지고, 또한 이에 대응하여 종래에는 볼 수 없었던 예술 기능도 발휘된다. 그리고 또한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가상 개념도 그 타당성을 잃게 된다.
벤야민은 상술한 바와 같은 현대적 예술, 즉 예배가치를 얼씬도 못하게 하는 예술의 전형을 영화에서 구하고, 그 성과에 대한 선험적 기도를 회화ㆍ문예의 다다이즘으로 간주한다. 복제예술은 예술과 대중의 관계를 변화시키게 되는데, 예배가치를 온존시킨 위에서 대중조직화는 정치의 심미화(Ästhetisierung)로 나아가 결국 파시즘의 예술정책에서 구현된다. 이에 반하여 예배가치를 벗어던지고 예술의 정치화(politisierung)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이다.
그런데 루카치를 비롯한 위의 마르크스미학에 대부분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가끔 소비에트연방이나 동구 위성국들에서는 이단이라는 각인이 찍히거나 수정주의로 비판받고 있으며, 또한 때로는 묵살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조가 되어야 할 사회주의 이념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헤겔이나 초기 마르크스 철학, 유태교ㆍ그리스도교적 종말론이나 낭만주의적 인간전체성 이념 등으로 강하게 윤색되어 독자적인 고유한 맛을 내고 있다. 또한 예술 자체의 수용방식을 보면, 우선 루카치로 대표되는 것처럼, 과학과의 상호보완성을 고려하면서 인류의 자기의식의 표현이 반영론의 방향에서 예술을 파악하는 것이 있고, 또한 블로흐와 같이 종교와의 대결을 심화시키면서 예술의 유토피아성을 역설하는 것도 있으며, 나아가 사회비판적 기능을 도출하려는 것도 있어서, 각각의 학설을 종합ㆍ통일하는 관점이 결코 쉽사리 창출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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