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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 )

그는「예술작품의 근원」(Der Uursprung des Kunstwerkes, in ; Holzwege, 1950)이라는 논문에서 먼저 예술작품의 ‘사물성’(Dingheit)을 단서로 삼으면서, 주체를 모든 존재자가 관계되는 중심으로서 정립하여, 존재자의 존재를 대상성으로만 파악하는 근대철학 - 미학을 비판하고,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독자적인 실존론적 존재론 ․ 진리론 안에서 전개하려고 한다. 예술 일반의 본질은 “존재자의 진리를 작품 내에서 자기정립”(das sich-ins - Werk-Setzen der Wahrheit des Seienden) 시키는데 있는데, 이 경우 정립이하는 것은 “존립하게 하다”(zum Stehen bringen)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존재자는 작품에서 그 존재의 휘광 속에 우뚝 선채로 나타난다.”라고 말해지듯이, 앞의 명제는 개별적 존재자의 재현이 원상과 모상의 일치라는 의미에서의 진리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라는 것’(Wer ksein)은 세계를 수립하는(anfstellen) 것을 의미하는데, 작품은 세계를 수립할 때 소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재를 소재로서 뚜렷하게 나타낸다(her-stellen). 그런데 소재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그 위에, 또 그 가운데 자신의 주거를 세우는 것으로 ‘대지’(Erde)라고 불리는 것이다. 세계를 수립하고 대지를 뚜렷하게 나타내는 것은 작품의 ‘작품이라는 것’의 본질적 경향인데, 세계는 본질적으로 자기를 열어 보이는 것(das Sichöffnfnde)이고, 대지는 자기를 닫는 것(das Sichverschliessende)이어서 상호 대립하는 성질을 갖는다. 이러한 양자의 대립은 하나의 투쟁(streit)이다. 그러나 작품의 통일은 이러한 투쟁을 무의미한 일치로 소멸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맡아 싸우도록 함(Bestreitung des Streites)으로써 성립한다. 그리고 거기에서야말로 ‘스스로 평온해진 작품의 휴식’(die Ruhe in sich ruhenden Werkes)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작품은 진리가 만들어지는(ges chehen) 하나의 방식으로 된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진리는 인식과 사상(事象)의 일치라는 의미에서의 올바름(Richtigkeit)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를 감추어진 상태에서 끄집어내 비은폐성(Unverborgen heit)으로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각각의 존재자를 열어보이는 것은 동시에 전체적으로 존재자를 은폐한다는 점에서 진리는 또한 본질적으로 은폐성-비진리(Un-wahrheit)이기도 하다. 진리의 본질은 조명(Lichtung)과 은폐 사이의 투쟁에 놓여있다. 진리의 이러한 본질에서 볼 때 작품은 진리 발생의 한 방식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세계를 수립하고 대지를 뚜렷하게 나타내는 가운데서, 존재자 전체가 비은폐성을 획득케 하고 진리가 투쟁다운 투쟁을 전개하도록 해주는 하나의 성과물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은 진리의 형태와 관련해 볼 때, 말하자면 작품의 창작적인 면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현실은 충분하지 않다. 창작된 것을 진정한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작품을 통해 열려진 것의 내부로 들어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세계가 대지에 대한 일상적인 관계를 변화시키고, 작품 안에서 만들어지는 진리에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작품을 작품답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유지’(bewahrung)하는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리하여 하이데거의 예술의 근원에 대한 물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래의 미학, 예술학의 틀을 크게 뛰어넘은 것인데, 이러한 경향은 ‘시작’(詩作, Dichtung)에 대한 사색에서 훨씬 두드러졌다. 그는 시란 모든 예술 가운데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하고,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시작(詩作)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언어를 단순한 경험의 매개물로서가 아니라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서 파악하는 그의 사고방식에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언어에 관한 사색을 바탕으로 그는『휄더린 시의 해명』(Er- läuterungen zur Hölderlins Dichtung,1951) 이나『시인이여 무엇 때문에』(wozu Dichter ? in: Holzwege )에서 시작(詩作)이나 시인의 사명에 대한 고찰을 전개하고 있다. 시인은 존재의 소리나지 않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모든 것을 그 본질에서 이름 짓는다. 그러나 이 명명(命名, Nennung)은 기존의 것에 대해 외부로부터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본질적인 언어를 말한다. 그 때문에 존재자는 이 명명에 의해서 비로소 그 본질로 명명되고 존재자로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시작은 언어에 의한, 존재의 건립(Stiftung des Seins)으로 파악된다. 근래에 들어 하이데거는 주로 시작(詩作)을 중심으로 사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단순하게 미학· 예술학의 틀 내에서만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 발전 또는 전환의 결과로 생각해야 하며, 그의 철학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만이 충분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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