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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대사 物質代謝] (Stoffwechsel )

목차

  1. 【Ⅰ】 맑스와 리비히
  2. 【Ⅱ】 노동과정
  3. 【Ⅲ】 자연력들-개량과 황폐

【Ⅰ】 맑스와 리비히

맑스가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라고 말하는 경우에 그것은 리비히적인 자연과학적 개념으로서뿐만 아니라 맑스의 독자적인 사회과학적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즉 맑스가 "자연적 물질대사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리비히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 없이 계속되지만 인간이 가담할 수 있는, 자연력들의 일대순환(ein großerKreislauf)"을 가리키는 것이며, 지리적 규모에서의 신진대사=질료변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하나의 과정"인 "노동과정"으로서 파악할 때에는 그 물질대사를 "인간이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 매개하고 규제하고 제어하는" 측면에 역점이 놓인다[『자본』, 23a:234]. "철이 녹슬고, 나무가 썩는" 것은 동식물이나 인간이 죽어서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적 물질대사 과정이지만, 도구가 녹슬거나 썩거나 하는 것은 가축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과정에서는 "자연적 물질대사의 파괴력"[같은 책:240]이나 다름없으며, 그 자연력은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규제하고 제어"되어야만 한다.

【Ⅱ】 노동과정

"노동과정의 단순한 계기들"은 "노동 그 자체와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이다[23a:235]. 도구나 기계, 그 밖의 노동수단은 물론이거니와 원료, 종자, 비육용 가축 등의 노동대상도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구체적 유용노동"의 산물인 동시에 기술적 개량의 산물이자 "역사의 선물"이다. 노동수단을 가지고서 노동대상에 작용을 가하는 노동 그 자체-따라서 노동과정-에도 많든 적든 "인간 노동을 매개로 하여 계속된 변화"[같은 책:238]가 각인되어 있다.

【Ⅲ】 자연력들-개량과 황폐

그러나 그 계속적 변화‒개량은 맑스의 인간학 혹은 인간 해방의 시각에서 본다면 "인간과 토지 사이의 물질대사를 교란"[23a:656]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우선 첫째로, 자본주의의 발전은 "노동생산물의 물질대사"를 상품교환이라는 "사회적 물질대사 과정" 혹은 "사회적 노동의 물질대사" 과정[같은 책:138, 140, 151]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농공분리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물질대사를 확대한다. 농산물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소비되고 토양성분은 다시 원래의 토지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근대 농업은 세련된 약탈농업이다"라고 말하는 리비히를 인용하는 맑스는, "자본제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로부터 약탈하는 기술의 진보인 동시에, 토지로부터 약탈하는 기술의 진보······, 토지의 비옥도의 항구적 원천을 파멸시키기 위한 진보이다"[같은 책:657]라고 말한다.

둘째로, 노동자가 "잉여가치 생산기계"로 간주되고 가축이 "비료 제조수단" 혹은 "물질대사 기계(Stoffwechselmaschinen)"로 간주될[23a:239, 509] 때, "기계는 그저 낡아질 뿐"이지만 살아 있는 자연력들은 "올바르게 다루면 끊임없이 좋아진다"[25b:1001-1002]는 것조차도 망각된다. 포도린스키를 비판하며 엥겔스도 말하듯이 "공업에서는 에너지는 그저 소비될 뿐"이지만 "농업에서는" "인간이 노동에 의해 의도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을 식물이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그 "저장 에너지가 가축에게 이행된다"[「엥겔스가 맑스에게 보낸 편지」(1882. 12. 19), 35:110-111]라고 하는 그 차이가 망각된다.

셋째로, 자본의 생산력으로서 나타나는 자연력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부르주아적인" 사고방식은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노동만이 모든 부의 원천"인 것처럼 생각하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 맑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라살레와 같이 "모든 부의 원천은 노동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의 첫 번째 원천인 자연에 대해 처음부터 소유자로서 대하고, 이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로서 다루는" "부르주아적인 말투"이다[19:15].

맑스에게서 "노동과정"이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의 일반적 조건이자 인간생활의 영원한 자연조건"[『자본』, 23a:241]이라는 것의 참된 의미는 생산자에 의한 생산수단(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의 소유가 인간해방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소유에 의한 생산자의 해방은 인간해방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긴 해도 그 자체가 목표인 것은 아니다. 

무릇 살아 있는 자연력들의 소유를 전제로 하는 노동과정은 영속적일 수 없는 "특정한 역사적 형태"[같은 책25b:1129]이다. "인간과 자연의 완성된 통일"인 것과 같은 사회[『경제학 · 철학 초고』, 4:458]에서는 "지구에 대한 개개인의 사유()"가 "한 사람의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사유와 같이 터무니없는 것으로서 나타날"[『자본』, 25b:995] 뿐만 아니라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로서 다루는" 것과 같은 인간의 오만 그 자체가 부정된다. 그것은 '토지 국유'라든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부정의 부정')론을 넘어서는 맑스의 시각이다.

-시이나 시게아키()

[네이버 지식백과] 물질대사 [物質代謝, Stoffwechsel]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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