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金日成, 1912~1994)] ()
Ⅰ. 김일성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1989년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 조선노동당 총비서, 당군사위원장, 인민군 최고사령관, 원수이다. 본명은 김성주로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여 약 2년간의 평양 유학 기간(1923~1924년, 평양 칠골의 창덕학교)을 제외하고는 줄곧 만주에서 성장하였다. 오늘날 북한 문헌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1926년 10월(화전현 화성의숙 재학)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결성하였으며, 1927년 8 월(길림 육문 중학 재학)에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조직하였다고 한다(일제 관헌자료에서도 그가 1929년 5월 현재 길림 육문 중학 재학생으로서 <조선공산청년회>라는 조직의 주요 멤버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1930년 6월에는 장춘현 카륜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였고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노선을 밝혔다고 한다.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활동은 만주사변 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즉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중국과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동북(만주) 각지에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서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였는데, 그도 이 일환으로 1932년 4월 25일 안도현에서 조선인 동료들과 함께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하였다. 그가 속해 있던 동만(당시 간도지방)의 항일유격대가 확대·발전하여 1934년 3월 동북 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북한의 표현으로는 <조선인민혁명군>)로 개편되자 김일성은 그 해 가을부터 제3단 정치위원을 맡았다. 그는 1936년 3월 동북 인민혁명군 제2군이 항일 민족통일전선의 일환으로 동북 항일연군 제2군으로 개편되자 제3사 사장으로 선임되었으며 곧이어 그 해 7월 편제 개편으로 항일연군 제1로군 제6사 사장이 되었다. 1938년 12월 일제의 대토벌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일성은 부대편제 개편에 따라 항일연군 제1로군의 제2방면군 군장을 맡았다. 이후 그는 홍기하 전투(1940년 3월) 등 대규모 전투를 치렀고 1939년 말부터 시작된 일제의 대토벌로 항일연군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되자 부대를 이끌고 소만 국경지대의 소련 영내로 이동하였다. 소만 국경지대로 이동한 그는 계속 만주와 조선 북부지방에 소조를 파견하면서 대일 항전을 계속하였으며 1942년 7월 동북 항일연군의 후신으로 <동북 항일연군 교도려>가 결성되자 동북 항일연군 제1로군 출신이 모인 제1영의 영장이 되었다. 그는 해방 직전 동북 항일연군 교도려에서 최용건, 김책, 안길 등과 함께 조선의 해방 사업을 추진할 <조선공작단>을 만들어 단장에 취임하였다. 소련군의 대일참전이 개시되자 동북 항일연군 교도려 소속의 일부 유격대원들은 소련군과 함께 만주와 조선 북부 지방으로 진격해 들어왔으며 김일성은 9월 중순 최용건, 김책 등 지도급 동료들과 함께 원산항을 통해 귀국하였다. 귀국 후 김일성은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원 및 열성자 대회’(1945년 10월 10일~13일)에 참석하여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설을 주도하였고 1945년 12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통해 분국 책임비서로 취임하였다. 1946년 2월 8일 총일전선에 입각한 임시 중앙기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되자 그는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김일성은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가 결성되자 다시 위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48년 9월 북한정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내각 수상에 선임되었다. Ⅱ.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내각 수상직에 있으면서 군사위원회 위원장과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전쟁을 지휘하였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이 제거되자 김일성은 그의 유일지도 체계를 점차 확고히 확립해나갔다. 김일성의 유일지도 체계 확립은 북한사회 전반에서의 ‘주체’의 확립과 대중과 지도자와의 직접 만남, 당 기구·국가 기구의 정비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1966년 10월 당4기 14차 중앙 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북한정치체계 전반을 관장할 당중앙위원회 비서국이 설치되고 김일성이 총비서로 선임되었다. 뒤이어서 1967년 조선노동당 4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그의 사상인 주체사상이 유일사상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 11월에 열린 노동당 제5차대회에서는 이러한 주체사상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함께 조선노동당의 지도이념으로 채택되었으며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1980년 10월)에서는 유일 지도 사상으로 채택되었다. 한편 1972년 12월 새로 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유일지도 체계에 알맞게 국가기구가 개편되었다. 이 헌법은 국가의 수반이며 국가주권을 대표하는 ‘주석’제를 신설하고, 국가주권의 최고 지도기관으로 주석이 수위가 되는 중앙인민위원회를 신설함으로써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의 제도화가 보장되었다. → 주체사상, 타도제국주의동맹, 조국광복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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