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래(金泰來, 1907~?)] ()
(조선학생전위동맹 책임비서) 충남 천안 출신으로, 1920년대 중반 고학당(苦學堂) 재학중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1927년 11월 조선학생혁명당 결성에 참여하여 재정부 책임을 맡았고, 1928년 3월에 간부진을 개편할 때 조사조직부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1929년 3월 조선공산당재조직준비위원회 산하 조선공산청년회에 가입했고 조선학생혁명당을 조선학생전위동맹으로 개편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5월 서울시내 각 중등학교 내에 전위동맹의 세포를 결성하기로 하고, 배재학교와 경신학교의 조직을 맡았다.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격문 ‘조선 학생청년 대중이여 궐기하라’를 서울에 살포했다. 일본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자 책임비서직을 윤형식(尹亨植)에게 넘겼고, 1930년 검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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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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