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金昌德, 생몰년 미상) 이덕산] ()
(조선의용군 간부) 1930년대 중반 동북인민혁명군 제4군 간부로서 북만(北滿)에서 활동했다. 그후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1938년경 연안(延安)으로 갔다. 1940년 무렵 동북(東北)으로 파견되는 간부양성소인 연안 항일군정대학(抗日軍政大學) 동북간부훈련반을 졸업했다. 이 무렵 경호단에 배치되어 모택동(毛澤東)의 경호업무에 종사했다. 해방 후 동북으로 진출하여 1945년 11월 조선의용군 제3지대 부지대장으로 임명되어 하얼삔(哈爾賓)과 북만 일대에서 의용군 확군(擴軍)과 조선인 보호활동을 전개했다. 1946년 봄 조선의용군 제3지대장(이후 중국인민해방군 제164사단)에 취임하여 중국 내전에 참전했다. 1948년 10월 장춘(長春) 탈환전에 참전했다.
(인민군 제5사단장) 장춘 함락 후 부대를 이끌고 한때 장춘 방위를 담당했다. 1949년 7월 중국인민해방군 제164사단장으로서 부대원을 이끌고 나남으로 귀국했다. 이 부대가 조선인민군 제5사단으로 확대 개편되자 초대 사단장이 되었다. 한국전쟁 때 동부전선을 따라 강릉으로 내려왔다. 1955년 4월 민족보위성 부상(副相), 1956년 4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 1957년 8월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9월 최고회의 상임위원, 1965년 1월 중앙검열위원회 부위원장, 최고회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1969년 숙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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