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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봉(金在鳳, 1890~1944) 槿田] ()

(조공 초대 책임비서) 경북 안동의 유생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다. 1908년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를 졸업하고 1913년 1월 경성공업전습소 염직과에 입학하여 이듬해 12월 졸업했다. 3. 1운동에 참가하고, 그해 『만주일보(滿洲日報)』 경성지사 기자가 되었다가 1920년 말 『만주일보』가 폐간됨에 따라 퇴사했다. 이 무렵 비밀공산주의단체에 가담했다. 1921년 1월 조선독립단의 문서를 전달한 혐의로 검거되어 징역 6월을 선고받고, 9월에 출옥한 후 소련으로 망명했다. 1922년 1월 모스끄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조선노동대회 대표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11월 베르흐네우진스끄 고려공산당 연합대회에 참석했고, 대회 결렬 후 치따에서 소집된 고려공산당(이르꾸쯔끄파) 대회에 참가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3년 5월 꼬르뷰로(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 파견원으로 선임되어 입국해서 신사상연구회에 참여했다. 8월 서울에서 비밀리에 꼬르뷰로 국내부를 설치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4년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비밀리에 조선공산당 창당작업을 주도했다. 2월 꼬르뷰로 국내부를 대표하여 ‘통일 조공’ 결성을 협의하기 위해 각파 공산주의자그룹의 대표자 회합인 ‘13인회(十三人會)’에 참석했다. 10월 ‘정재달(鄭在達)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 무렵 화요회에 참가했다. 1925년 4월 서울에서 조공 창립대회 개최를 주도하고 초대 책임비서로 선임되었다. 12월 ‘제1차 조공 검거사건’ 당시 체포되어 1928년 2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944년 3월 3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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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봉(金在鳳, 1890~1944) 槿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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