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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金雄, 1912~?) 王信虎] ()

(조선의용군 간부대대장) 경북 김천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김구(金九)의 추천으로 1934년 2월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입학했다. 8월 남경(南京)으로 가서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기 과정에 입학했다. 1935년 8월 비밀결사 혁명동지회(10월회)에 가담했고 1936년 7월 한국국민당 당원이 되었다. 1937년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했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연안(延安)으로 가서 1939년 항일군정대학(抗日軍政大學)에서 수학했다. 그후 팔로군(八路軍)부대에서 활동했다. 1944년 3월 조선의용군 화북지대(華北支隊) 제1대[山東部隊] 대장으로서 산동성 태산(泰山)지구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그후 화중(華中)의 신사군(新四軍)으로 옮아가 1945년 조선의용군 화중지대장을 맡았다. 3월 강소성(江蘇省) 익림(益林)에서 항일군정대학 제5분교 산하 특별훈련반(조선혁명군정학교 화중분교) 교장으로서 일본군에서 탈출해오는 조선 청년들을 교육했다. 일제 패망 직전 화중지대원 일부를 인솔하고 연안으로 가던 중 해방을 맞았다. 그 무렵 태항산(太行山)에서 조선의용군 간부대대를 편성하고 대대장에 취임하여 만주로 진출했다. 11월 심양(瀋陽)에서 조선의용군 제1지대[南滿支隊] 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인민군 전선사령관) 1946년 봄 38선 이북으로 귀국하여 보안간부학교의 부교장이 되었다. 1948년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제2차대회)을 지냈고 1950년 조선인민군 제1군단 사령관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전, 9월 전선사령부 참모장이 되었다. 1951년 민족보위성 부상(副相), 1953년 2월 전선사령관, 1958년 인민군 대장을 역임했다. ‘종파 사건’에 연루되어 공직에서 물러났다. 1968년 10년 만에 재부상하여 아시아 ․ 아프리카단결위원회원회 부위원장,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 조선 ․ 라틴아메리카우호협회 위원장을 지냈다. 1978년 11월 남예멘 주재 대사직에서 해임된 후 공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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