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金永萬, 1911~?)] ()
(경주적색농조준비위 관계자) 1923년 4월 충남 연산공립보통학교를 중퇴했다. 1930년 8월 연극단에 가입하여 배우로 일했고 1934년 2월 경주 양북면 감포리 요정 대홍관의 서기가 되었다. 그해 경주적색농민조합준비위원회에 가 입했다. 6월 협동회를 조직하고 감포리 청년들을 대상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1936년 대구 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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