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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金基鎭, 1903~85) (號)八峰 東初 金村八峯 여덟뫼 具準儀] ()

(3 ․ 1운동 참가자,『朝鮮之光』기자) 충북 청원에서 대지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김복진(金復鎭)의 동생이다. 1907년부터 사숙에서 한학을 배웠다. 1910년 아버지가 황간군수로 전근함에 따라 황간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12년 6월 영동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입학하여 1916년 3월 졸업한 후 4월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3 ․ 1운동에 참가한 이후『독립신문』을 인쇄하여 유포하다가 체포되어 3일간 구금되었다 1920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4월『동아일보』에 등초라는 필명으로「가련아」를 발표했다. 1921년 봄 무렵 릿꾜오대학(立敎大學) 영문학부에 입학했다. 1922년 5월 토월회(土月會) 결성에 참여하고 1923년 5월 토월회의 귀국공연 준비를 위한 대표로 선발되어 귀국했다. 그해 파스큘라(PASKULA) 결성에 참여했다. 192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매일신보』에 취직했다가 1925년『시대일보』로 직장을 옮겼다. 같은 해 8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가입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 기관지『조선지광』에서 일하다가 10월『중외일보』에 취직했다. 1930년경부터『중외일보』『조선일보』사회부장을 역임했다.
(카프 관계자, 변절) 1931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으나, 자술서를 쓰고 10일 만에 석방되었다. 1934년 형 김복진과 함께 애지사(愛智社)를 창립하고『청년조선』창간호를 발행했으나, 러 시아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35년 7월 경기도경찰부에 카프 해산계를 제출했다. 그해 카프 검거사건으로 전북도경찰부에 70일간 구금되었다. 1938년 7월 친일단체인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 결성준비위원이 되었다. 1942년에서 1943년까지『매일신보』에「역사적 명령」「대동아전쟁송」「신세계의 첫장」「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나도 가겠습니다」「가라! 군기 아래로 어버이들을 대신해서」등의 친일문학작품을 발표했다. 1944년 문인보국회 상무이사에 취임하여 이광수(李光洙)와 함께 상해(上海) 대동아문학자대회(大東亞文學者大會)에 참가했다. 1945년 애지사를 재창립하여 인쇄 ․ 출판업에 종사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애지사의 인쇄 ․ 조판공들에 의해 고발당해 인민재판에 회부되었다. 1951년 대구로 피난하여 종군작가로 입대했다. 1958년 민권옹호투쟁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고 1960년 『경향신문』 주필을 지냈다. 1961년 5 ․ 16군사쿠데타 이후 재건국민운동 중앙회장이 되었다. 1985년 5월 8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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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金基鎭, 1903~85) (號)八峰 東初 金村八峯 여덟뫼 具準儀
김기진(金基鎭, 1903~85) (號)八峰 東初 金村八峯 여덟뫼 具準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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