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김경천(金擎天, 1883~?) (本)金光瑞 金敬天 金擎千 金應天] ()

(연해주 한인 빨치산연합부대 사령관) 서울 사직동 양반 가문 출신으로, 서울에서 중등학교를 마치고 일본 토오꾜오(東京) 육군사관학교에 유학했다. 졸업 후 일본육군 기병중위로 근무했다. 3 ․ 1운동 때 러시아와 남북 만주 일대의 무장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6월 일본군 장교였던 이동천(李東天) ․ 이청천(李靑天) 등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다. 남만(南滿)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20년 초 연해주로 이동했다. 3월 한인 빨치산부대의 지휘자로서 러시아 적군(赤軍)과 연합하여 니꼴라예프스끄 해방전투에 참전했다. 그 후 백위군(白衛軍)과 일본군의 세력에 밀려 수찬지방으로 퇴각하던 도중 중국인 마적 고산부대 240여 명과 맞닥뜨려 전투 끝에 섬멸시켰다. 1921년 봄 올가 지역에서 연합빨치산부대 건립에 참여하고 사령관이 되었다. 아누치노, 올가 일대에서 러시아 백위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각처에서 출몰하는 중국인 마적부대와 맞서 싸웠다. 1922년 1월 예하부대를 이끌고 연해주 이만지역으로 이동하여 이만 해방전투에 참가했다. 그해 여름 연해주 혁명군사회의 결정에 따라 뽀셰뜨지구 한인 빨치산연합부대 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시베리아내전이 끝날 때까지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과 함께 백위군에 반대하는 각종 전투에 참가했다. 시베리아내전이 끝난 뒤 고려사범학교에서 군사학 교관으로 일했고 블라지보스또끄의 여러 기관에서 근무했다. 1923년 7월『동아일보』지상에「빙설 쌓인 시베리아에서 홍백 전쟁한 실지경험담」이라는 제목의 수기를 발표했다. 1930년대 후반 스딸린 숙청 당시 체포되어 까자흐공화국 까라간다에서 주거제한을 받던 중 사망했다.
■ 인접어

김경서(金景瑞, 1902~?)
김경식(金璟植, 1901~?) 金暻植
김경식(金瓊植, 생몰년 미상)
김경재(金環載, 1899~?) 金綽 赤星 陳榮喆 金世成 金ᅳ成 金致柱 朴君植 金俊模 金光錫 金光宇 方友淸
김경준(金京俊, 1910~?) 金正弼
김경천(金擎天, 1883~?) (本)金光瑞 金敬天 金擎千 金應天
김경천(金擎天, 1883~?) (本)金光瑞 金敬天 金擎千 金應天
김경태(金敬泰, 1904~?)
김경한(金慶漢, 1903~?)
김계림(金桂林, 1904~?) 金昌吉
김계영(金桂榮, 1901~?) 秋岡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