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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수 (姜文秀, 1904〜?) 姜武秀 姜武洙 趙基斗 金一松] ()

(조공 만주총국 당원) 함북 출신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러시아 니꼴리스끄에서 관립사범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1921년 간도에서 소학교 교사로 일했다. 1924년 9월 오르그뷰로(고려공산당 창립대회준비위원회) 파견 유학생으로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으나 상해파와 화요파의 분쟁으로 제적되었다. 그후 레닌그라드 국제사관양성소 보병과에 전입했으나 파쟁 때문에 퇴소당한 후 간도로 돌아와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배영학교(培英學校)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26년 가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입당하여 옹성랍자(甕聲磖子)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1927년 8월 『동아일보』 간도지국 기자가 되었다. 이 무렵 만주총국을 탈당하고 서울파의 재만조선공산주의자단체에 가입하여 공청부 책임 대리가 되었다.
(조선좌ᅡ익노조 전국평의회 조직준비회 정치부 책임자,변절) 1929년 3월 길림성에서 조공재건설준비위원회 발기회에 참여하여 만주부 조직 책임을 맡았다. 8월경 조공재건설준비위 만주부를 조직했고 고려공산청년회 재건설준비위원회 발기회에 참여했다. 1930년 8월경 부인 석경덕(石景德)과 함께 귀국하여 과자점을 경영하면서 콘푸로닥쓰회사의 직공으로 일했다. 11월경 조공재건설준비위 경의선위원회 책임비서 겸 조직부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1931년 3월 조공재건설준비위를 해체하고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를 결성하여 정치부 책임자,남조선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4월 서울 용산경찰서에 검거되어 1934년 6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변절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참여하여 특무부대 장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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