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스] (Joseph von Görres )
출생-사망: 1776년 ~ 1848년 코블렌츠에서 태어난 저널리스트. 이미 김나지움 재학 시절부터 프랑스 혁명에 감격하며, 마인츠의 자코뱅 클럽에도 관여했다. 1797년에 '코블렌츠 민중협회'의 멤버가 되어 라인 강 좌안 독립운동(시스레난 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한다. 라인 좌안의 공화국 설립을 목표로 하여 『붉은 신문』이나 『뤼베찰』지 등을 통해 정보선전 활동을 하지만, 프랑스의 군사지배에는 반대했다. 그로 인해 1799년 10월에는 단기간 투옥 당하게 된다.
얼마 후 라인 강 좌안의 독립파 대표로서 파리에 들어간다. 여기서 프랑스 혁명이 변질되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나폴레옹의 주변국에 대한 점령정책에도 실망하게 된다. 아울러 프랑스와 독일의 깊은 골과 국민성 차이를 인식하고, 이러한 체험들을 『나의 파리 부임의 결말』에 기록한다. 그 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는 가운데 그 지역의 낭만파와 교류하면서 독일의 민족주의적인 입장으로 기울어진다.
1814년부터 『라이니셰 메르쿠르』지를 통해 입헌주의적인 정치운동을 하지만, 이 잡지는 1816년에 발매금지를 당한다. 나아가 1817년에는 프로이센이 입헌주의 국가의 선두에 서도록 하르덴베르크에게 요청한다. 그러나 빈 체제하에서 운동은 탄압받고, 1819년에 스트라스부르로 망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곳에서 가톨릭주의에 경도된 그는 얼마 후 보수파의 논객으로서 낭만주의적 가톨릭주의의 중심인물이 되며, 1827-48년까지 뮌헨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근무했다. -하마모토 다카시(浜本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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