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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金炯善, 1904~50) 金元植, 崔命煥] ()

(조공 당원) 경남 마산 출신으로, 김형윤(金炯潤)의 형, 김명시(金命時)의 오빠이다. 1917년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공립간이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부족으로 퇴학당했다. 상점원 및 부두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마산창고회사 사무원으로 5년간 근무했다. 1924년 8월 마산공산당 결성에 참여했다. 1925년 4월 경남 사상단체 동인회(同人會)에 발기인으로 참가했으며 5월 마산청년회 운동부원이 되었다. 7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마산야체이까에, 고려공산청년회에 입회하여 마산제1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9월 마산노농동우회 교무부 책임자가 되었다. 12월 ‘제1차 조공검거사건’에 연루되어 마산경찰서에 한때 검속되었다. 같은 달 마산청년연합회 총무부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1926년 봄 『조선일보』 마산지국을 경영했다. 3월 마산기자단 집행위원, 4월 마산노동연맹 발기준비위원, 경남기자동맹 서무부 책임자, 5월 마산노동회의 벽신문 『첫소리』 통신부원이 되었다. 8월 ‘제2차 조공검거사건’에 연루되어 중국 상해(上海)를 거쳐 광동(廣東)으로 망명했다.
(남로당 중앙감찰위 부위원장) 1927년 1월 중산대학(中山大學)에 입학했다. 1928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강소성(江蘇省) 법남구(法南區) 한인지부에 배속되었다. 1929년 6월 재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가입하여 10월 유호(留滬) 한국독립운동자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총무부장이 되었다. 1930년 7월경 중공의 지시에 따라 코민테른 동양부 산하 조선문제 뜨로이까의 조직선으로 배속되었다. 1931년 2월 조공 재건운동을 위해 입국했다. 1932년 4월 반일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했다. 11월 『코뮤니스트』 배포망을 조직하고 그 배포망을 통해 조공 재건운동에 종사했다. 1933년 7월 영등포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4년 12월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건국준비위원회 교통부 위원이 되었다. 9월 조선인민공화국 경제부장 대리로 선정되고 조공 결성에 참여하여 조직국원이 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에 참가하고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 ‘조공 중앙 및 지방동지 연석간담회’에 중앙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당대회의 즉각 소집을 반대했다. 11월 남조선노동당 결성대회에 참석하여 의장단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2월 남로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50년 9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을 피해 월북하던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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