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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해(金天海, 1898~?) (本)金鶴儀] ()

(조공 일본총국 책임비서) 경남 울산에서 해산물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한문을 배웠고 이후 불문(佛門)에 입문하여 1916년 서울의 중앙학림에서 수학했다. 1920년 고향에서 해산물상을 했으며 동시에 야학을 열어 지 방의 농민을 교육했다. 1921년 토오꾜오(東京)에 가서 토목노동을 하면서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사회과에 입학했다. 1922년 여름 토오꾜오 조선노동동맹회 결성에 참가하여 실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1월 토오꾜오에서 창립된 사상단체 일월회(一月會) 회원이 되었다. 7월 요꼬하마시(横浜市)에서 카나가와현(神奈川縣) 조선합동노동조합을 조직하여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1926년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 1928년 5월 중 앙집행위원장 겸 쟁의부장이 되었다. 같은 달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일본총국 남부야체이까에 배속되었고, 6월에 일본총국 책임비서가 되었다. 8월 국치일 기념투쟁을 주도하다가 검거되어 1931년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감옥 내에서 조공 일본총국의 일본공산당으로의 해소를 주도했으며, 사노(佐野學)의 전향 성명서를 접하고도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다.
(일공 중앙위원, 노동당 교육부장) 1935년 12월 재일 조선인노동자들의 계몽과 일본인민전선을 실현하기 위해 토오꾜오에서 발간된 『조선신문』의 창립을 원조했고, 지국 설립에 노력했다.. 1937년 일본인민전선 탄압과 관련하여 검거, 투옥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942년 9월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토오꾜오예방구금소에 구금되었으며, 이때 일공 옥내위원(獄內委員)으로 활동했다. 1945년 10월 출옥하자 비전향 일본공산주의자 6인과 함께 일공 확대강화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이 되었다. 12월 일공 중앙위원, 조선인부장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0월 재일본조선인연맹 명예의장으로 추대되었으며, 고문으로 취임했다. 1947년 2월 일공 중앙위원 겸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다. 1948년 10월 재일본조선인연맹 제5차 대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축하를 위한 조국경축사절단장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9월 일공에서 추방되어 1950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갔다. 이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교육부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앙선거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노동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195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노력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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