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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동맹(建國同盟)] ()

조선건국동맹은 8·15 해방 전에 조선민족해방을 목표로 꾸준히 싸워왔던 지하 혁명단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가게 됨과 동시에 조선민족의 해방의 날도 멀지 않았음을 예측한 독립운동자들은 呂運亨을 중심으로 민족전선 결성에 의견이 일치, 1944년 8월 10일 경성부 주동의 여운형의 집에서 비밀결사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을 조직하였다. 참석자는 여운형 · 趙東祐 · 玄又玄 · 黄雲 · 李錫玖 · 金振宇 등이며, 李萬珪, 李如星, 崔謹愚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건국동맹은 불언(不言) · 불문(不文) · 불명(不明)을 3대 철칙으로 삼고 강령으로써는 ① 일제의 구축과 조선민족의 독립회복 ② 반추축국(反樞軸國)들과 협력하여 대일연합전선 형성 ③ 일체의 시정을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하고 노농대중의 해방을 추구할 것 등을 내세웠다. 또한 건국동맹은 중앙에 내무부 · 외무부 · 재무부를 두고 각 도에 조직망을 형성하는 한편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충하기 위하여 양주 · 양평 · 여주 · 이천 · 광주 · 홍천 · 양양 등지에 농민동맹을 조직, 유사시에 대비토록 했다. 건국동맹은 1945년 3월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유구(琉球)가 포위되자 노농군의 편성을 목적으로 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했는바, 그 조직은 경인(京人)지구(경기·황해도)와 삼척지구(강원도)를 먼저 설정 착수하고, 대구·부산·목포·평양·흥남·청진 등지에로 점차 확대키로 했다.
한편 건국동맹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로도 조직망을 펼쳐나갔다. 우선 만주 군관학교에 파견했던 朴承焕으로 하여금 유격대를 편성하여 국내진입계획을 세우게 하고, 북중국과 상해지방에도 연락책임자를 임명하였으며, 연안의 조선독립동맹과의 제휴에 합의(1944. 12), 박승환을 건국동맹 대표로 연안에 파견했다. 이에 연안의 독립동맹에서는 국치기념대회의 개최를 계기로 국내정세 보고를 위해 건국동맹에 정세조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건국동맹은 철저한 반일 인사들을 연안으로 탈출토록 돕는 한편 연안의 조선의용대 병사 모집을 국내 및 북경 등지에서 적극적으로 주선하기도 했다. 어쨌든 건국동맹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국내에 조직된 유일한 독립운동단체였으며, 그것이 국내외의 조직망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방직후 조선총독부의 권력이양 제의에 응하여 국내치안을 담당, 대과없이 치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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