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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마하 (1838-1916) ] (Mach, Ernst)

마하는 광학, 전자공학 그리고 파장역학의 중요한 법칙들을 확립했다.
또한 그는 모든 지식은 감각경험에 의한 정보의 개념적 조직이라는 견해를 지지했던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마하는 19세기 후반 긍정주의의 극단적 주관주의 학파의 지도자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도 그의 물리학의 언명되지 않았던 가설들을 지속적으로 접했다는 이유를 들어 마하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돌이켜 볼때 마하의 긍정주의는 원초적이고 지나치게 주관적이었다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 마하는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주의비판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었다.

마하는 14세까지 집에서 교육받았으며, 17세에 빈 대학에 입학했하여 22세에 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864년에는 그라쯔(Graz) 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
1860년대 중반은 ‘제 2의 긍정주의(Second Positivism)' 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긍정주의는 이미 유럽 철학을 지배했었고, 그 최전선에 있었던 마하와 함께 철학논쟁의 중심무대는 지각의 생리학적 구조에 대한 분석으로 옮겨갔고, 이는 인식과 자연 그리고 지식의 정당성에 관한 오래된 문제들을 풀기 위함이었다.
(참조 : 현미경내에서의 지각에 관한 에세이 (Perception Under the Microscope)

일생 동안 물리학 연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하의 관심은 이미 심리학과 지각 생리학으로 기울었다.

1867년 그는 프라하의 찰스 대학(Charles)에서 실험 물리학 교수직을 수락하고 1895년까지 재직하게 된다. 이곳에서 어떻게 정신이 움직임과 상승, 음파의 측정, 파장의 전파 그리고 초음파('마하 번호')를 감지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지각의 분석 (In Analysis of the Sensations 1886) 에서 그는 지식의 유일한 내용은
지각이며 물질체는 관찰 속에서 현존하는 지각의 개념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하는 이를 근거로 절대 시간과 공간과 같은 개념들을 무효하다고 생각하여 거부했다.
이것은 마하의 가장 유명한 원칙 즉 관성은 하나의 신체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다른 신체 간의 상호작용의 표면화 라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하는 1895년 빈 대학으로 돌아와 귀납철학과 교수로 일했으나, 2년 후 심장마비를 겪었고, 1901년에는 활발한 연구에서 은퇴했다. 이 때 그는 오스트리아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퇴직 후에도 강의와 저술을 계속했으며, 1905년에는 ‘지식과 실수(Knowledge and Error )’ , 1910년에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참고 :지각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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