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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원조(敎育援助)] (educational aid)

I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한국은 각종 외국 원조기관들의 주요 원조사업 대상국의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후 한국에 제공된 각종 교육원조를 크게 대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 군정기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정부와 유엔 한국재건단UNKRA이 한국 정부에 제공한 각종 무상 교육원조이다. 이것은 원조의 도입과 운용 면에서 당시 경제부문에 투입된 무상원조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한국 교육의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둘째 한미재단, 아세아재단, 미국구호협회 CARE 등과 같은 민간단체, 에수회·감리교 산하의 종교단체 그리고 영국대사관, 미 공보처, 국제연합 아동기금UNICEF,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미 교육위원회(일명 풀브라이트 장학위원회) 등과 같은 공적 기관에 의한 교육원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교육원조는 19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지만, 대체로 구호 차원의 간헐적인 원조였다. 물론 풀브라이트 프로그램과 같이 한·미 교육교환에 상당한 역할이 프로그램에 의해 1950년부터 1982년까지 약 900명 이상의 한국인이 미국에서 대학원 수준의 공부를 하였다을 한 것도 있지만, 첫번째 형태의 교육원조와 비교해볼 때 그것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였으며 원조대상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교육원조는 미 군정기 이래 1960년대 초반까지 다각적·집중적으로 제공된 정부 차원의 무상 교육원조를 지칭한다.

II 먼저 미 군정 당시의 교육원조 계획안은 이미 1945년말에서 19461월 사이에 학무국의 자문기관인 미국 교육원조 추진심의회에서 작성되었다. 그 후 19463월에 6명의 한국인 사절단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 당국과 이 계획안에 대한 절충을 시도하였고, 19476월에는 이른바 안트 Arndt, C. 0. 조사단이 내한하여 원조 실행에 앞서 한국교육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치밀한 사전준비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리오아GARI0A 원조에서 교육부문에 지원된 금액은 79만 달러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가리오아 자금과 미 군정청의 보조금으로 19488월에 설립된 교원연수소 Teacher Training Center는 한국 교육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3명의 미국 교육 전문가가 내한하여 이곳에서 약 4개월(1948. 8.3~11. 25) 동안 총 567명에 달하는 현직 교원들에게 각종 미국식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강의함으로써, 이것은 미국 교육 전문가들에 의해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의 적극적인 국내 확산이 시도된 최초의 계기를 이루었다. 1950년대의 교육원조 사업은 그전과는 달리 이중재원, 즉 원조불하와 원조물자의 판매대전인 대충자금으로 추진되었다. 유엔에 의한 운크라 교육원조 (1952-1959)와 미국에 의한 포아·이카FOA·ICA 교육 원조(1954~1961)를 종합해보면, 총 원조규모는 원조불하가 약 3천만 달러, 대충자금이 120억 환에 달했다. 이는 당시 문교 일반예산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 중 고등교육에 40%, 교실건축에 27%, 교원교육에 17%, 중등교육에 13%, 사회교육에 2%가 투입되어, 고등교육 분야가 가장 강조되었다. 특히 서울대학교에 대한 원조는 전체 고등교육 원조의 약 80%를 점함으로써 전체 교육원조 사업에서 단일사업으로는 최대규모의 원조였다. 당시 교육원조의 실적을 살펴보면, 먼저 약 4천여 개의 각급학교 교실이 신축되었고 약 25백여 교실이 수리되었다. 둘째, 중등교육 수준에서는 교육원조의 90% 이상이 실업계 고교의 복구·확충에 투입되었다. 또한 새로운 중등교육 제도로서 종합고등학교 제도가 도입되었고, 전국적인 규모의 중등교육 실태조사가 실행되었다. 셋째, 60여 명이 넘는 미국 교육사절단(1952~1956)과 조지 피바디 대학교수단(1956~1962)이 내한하여 수천 명에 달하는 현직 교원의 현지 교육과 재교육을 실시하였고 실증적인 교육연구, 유아교육, 영어교육 등에 대한 각종 기술지도를 행하였다. 넷째, 각종 자연계 대학의 시설·서적이 확충되었다. 특히 서울대학교는 미네소타대학과의 계약으로 약 200여 명의 교원과 학생이 미국대학에 유학하였고, 56명의 미네소타대학 교원이 내한하여 농··의대 및 행정대학원에서 각종 기술적 지도를 수행하였다. 또한 각종 시설원조는 서울대학교의 급속한 양적 성장을 초래하였다. 다섯째, 교육원조를 매개로 하여 내한한 미국 교수들에 의해 경영학, 행정학, 도서관학이 미국식으로 재조직되거나 새로 도입되었다. 여섯째, 어학훈련소, 외국어학원, 교육행정연수원, 시청각교육원, 농촌 지도자의 양성을 위한 신생활교육원 등과 같은 다양한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이상과 같은 교육원조를 통해 약 400여 명의 한국인 교육관계 인사가 미국으로 장·단기의 유학을 떠났고, 200여 명에 달하는 미국 교육 전문가들이 한국에 내한하였다. 즉 교육원조를 매개로 한·미 간에 대규모 교육교류가 1950년대에 실현되었다. 미국의 대한(對韓) 교육원조가 당시 교육시설의 확충, 공교육비의 절감 등에 기여한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육원조가 한국 교육에 남긴 부정적인 앙금은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즉 특정 지역과 고등교육 분야에 교육원조가 편중됨으로써 한국 교육에서는 학교간·지역간의 불균등 성장이 가속화되었고, 미국 교육 전문가들에 의한 각종 기술지원은 한국 교육학을 기능적인 교직교육학으로 전락시켰으며, 다양한 미국식의 교육 실제와 제도가 한국 교육계에 풍미하게 되었다. 또한 1950년대 중반부터 교육원조를 매개로 하여 미국 편중 유학이 계속됨에 따라 미국 지향적 엘리트 집단이 새롭게 창출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전쟁의 효과로 창출된 반공체제를 방법적·기능적 교육이론으로 강화하고, 미국 지향적 엘리트 집단의 형성 등을 통해 이를 조직적으로 보완하는 의미를 갖는다. ·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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