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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南勞黨)] ()

I 남로당은 8.15 이후 남한에 형성된 좌익계 3, 즉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진보적 대중정당이다. 남로당의 결당식(합당대회)19461123일과 24일 이틀 동안 서울 견지동 시천교당에서 열렸다. 23일에는 14명의 임시의장단을 선출하고(여운형, 허헌, 이승엽, 이기석, 정노식, 이석구, 구재수, 최원택, 유영준, 김형선, 김광수, 안기성, 김상철, 정칠성) 강령과 규약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24일에는 각계 사회단체들의 축사 발표와 메시지 채택이 있었다. 남로당 중앙본부는 결당식이 끝난 뒤인 1210일 합동준비위원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중앙위원 29, 중앙감찰위원 11명을 선출하고, 위원장에 허헌(남조선신민당), 부위원장에 박헌영(조선공산당), 이기석(조선인민당) 등 각 당에서 1명씩을 뽑았다. 이때 중앙위원과 중앙감찰위원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중앙위원은 공산당 14, 인민당 9, 신민당 6명으로 박헌영, 이기석, 이승엽, 구재수, 김삼룡, 김용암, 강문석, 유영준, 이현상, 고찬보, 김오성, 송음수, 윤경철, 이재우, 김상혁, 김영재, 김계림, 김광수, 정노식, 성유경, 정윤, 김진국, 현우현, 홍남표, 박문규, 이주하, 김태준, 허성택, 허헌(29)이고 중앙감찰위원은 공산당 6, 인민당 4, 신민당 2명으로 최원택(위원장), 김형선(부위원장), 이석구(부위원장), 윤일주, 홍덕유, 오영, 이영욱, 홍성우, 이정모, 한영욱, 남경훈 외 2명이었다. 이상 남로당 중앙간부의 구성을 보면 공산당, 인민당, 신민당 계열의 인물들을 적당히 안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로당의 결당과 함께 조선인민당의 대표였던 여운형과 남조선신민당의 대표였던 백남운 등이 조선공산당내의 박헌영계와 함께 사회노동당 준비위원회를 결성함으로써 결국 남로당의 조직적 구성은 조선공산당내의 박헌영계와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 내의 사회주의자들의 결집이란 성격을 갖게 되고, 당의 지도력 역시 실질적으로는 박헌영계에 집중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II 그렇기 때문에 남로당의 정치노선을 설명하는 적지 않은 논자들이 조선공산당으로부터 변화된 남로당의 모습보다는 조선공산당의 지속성이란 측면에 많은 비중을 두면서 논의를 발전시켜왔다. 따라서 남로당의 정치노선을 논의할 때도 조선공산당의 정치노선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회성격과 정세에 대한 인식, 변혁단계론, 대미인식의 문제, 조직노선과 투쟁의 전략·전술 등에 관한 평가의 문제에서 많은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 이러한 평가와 논쟁의 준거가 되는 관점들은 몇개의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남로당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적 입장이고, 둘째는 남로당이 해방정국에서 차지했던 비중과 남한에서 사회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역사적 현실을 인정하면서 아울러 운동사의 전통과 민중운동의 지도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셋째는 운동사적 전통과 민중운동의 흐름이라는 측면은 강조하지만 지도노선에 대한 내재적 비판이 오히려 사회운동의 진전에 유익하다는 입장이며, 넷째는 주체적 오류에 대한 평가가 당시의 객관적 상황의 조건을 고려하여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나치게 과도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입장이다.

III 이상의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논쟁의 쟁점은 다음과 같다. 박헌영이 8월테제에서 제시했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론의 내용이 반제반봉건 민주주의혁명론의 내용과 같은 것인지의 여부 이때 변혁의 과제로서 제기되는 토지 국유화가 반제반봉건혁명 단계의 과제를 뛰어넘는 좌편향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 당시 변혁의 동력으로서 민족자본가를 제외한 것의 정당성 문제 당시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미국을 진보적 민주주의국가로 표현했는지, 아니면 알고도 미·소 협조라는 낙관적 정세관으로 인하여 유화적인 전술을 구사한 것인지의 문제, 아니면 미 군정과의 협조노선을 기본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있었는지의 문제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운영과정에서의 민주적 집중제의 관철 문제와 관련하여 박헌영과 경성 공산주의자 그룹의 파벌성 문제 조선공산당의 남로당으로의 전환과정 이후 1백만 당원을 목표로 하는 당원배가운동의 공과 문제 19467월 이전의 유화노선과 이후의 신전술노선, 그리고 1948년 이후 비합법 무장투쟁 노선의 평가 문제. 이상과 같은 논쟁점들에 대한 평가는 앞에서 지적한 관점과 입장에 따라 자못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남로당의 역사적 존재의 내용을 해명하고 그 의미를 총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노선과 조직, 활동 그리고 그 결과들을 종합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남로당은 단순한 소규모 정당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1946년 후반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정치투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거대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로당은 출범 직후부터 합법적인 활동과 비합법적인 투쟁을 배합하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즉 한편으로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한 조선임시정부 수립과 인민위원회의 강화를 위한 조직 확대사업을 벌이면서 1947년의 7.27 대회 등 대중집회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1946년 이후 각 지방의 민중항쟁을 지도하고 아울러 단독선거가 확정되면서부터는 1948년의 ‘2.7투쟁등 단독선거 반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5.10 선거를 전후로 한 시기부터는 유격전술을 채택하여 유격전구를 형성하고 병단 체제를 수립하는 등 무장활동을 전개하는 과정 속에서 한국 전쟁을 맞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활동 가운데 19488월에는 남북의 노동당이 연합중앙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496월에는 남로당과 북로당이 합당하여 조선노동당을 구성하였다. -> 박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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