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 가의 가계도] ()
 (아래 그림으로 연결. 그림을 클릭하여 크게 보기로 보세요.) [주] 맑스 가의 선조에 대한 연구는 우선 부계 선조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본래 그 발단은. 칼 맑스의 프랑크푸르트의 숙모(부친 하인리히의 여동생) 에스터 코셀(Ester Kossel)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1865년 7월 16일에 사망하였는데, 그녀의 유서는 형식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유산 분배가 법원에 맡겨지게 되었다. 때문에 법원은 맑스 가의 모든 가족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가 빈에 남아 있다. 조사한 인물은 빈의 도서관 사서 바하슈타인이었다(이 유산에 대해 맑스는 1866년 3월 24일의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하고 있다.)[Eugen Lewin-Dorsch, "Die Familie end Stammbaum von Karl Marx", Die Glocke, 9, Jg., 1923].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하인리히의 모계 선조에 대한 연구가 주된 것이었다. 그 후 30년간 연구의 진전은 없었다. 1958년 브릴링[B. Briling, "Beiträge zur Geschichte der Juden in Trier", Triersches Jahrbuch, 1985]이 유대인 공동체의 프로토콜을 연구한 결과 하인리히의 부계 선조의 가계도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칼 맑스의 모계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몬츠[H. Monz, Karl Marx, Grundlagen der Entwicklung zu Leben undWerk, Trier 1973]가 나이메헨의 아르히프를 조사한 것이 최초였다.
최근에는 힐켄스[J. Gielkens, Was ik maar weer in Bommel, Amsterdam 1997]가 네덜란드의 상세한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맑스 가에 관해서는 쇤케[M. Schöncke, Karl und Heinrich Marx und ihre GeschwisterLebenszeugnisse, Briefe, Dokumente, Bonn, 1993]가 상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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