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Deutscher Krieg)
1863년에 독일연방에 속하는 슐레스비히 공국과 독일계 인구가 많은 홀슈타인 공국의 합병을 덴마크가 시도하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이에 항의해서 1864년 공동으로 출병하여(덴마크 전쟁) 두 공국을 점령했다. 65년의 가스타인 협정으로 슐레스비히는 프로이센의, 홀슈타인은 오스트리아의 통치하에 두기로 결정되었지만, 프로이센은 홀슈타인도 지배하에 둘 것을 요구하여 오스트리아와 대립하며, 1866년 6월에 양국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그 배경에는 독일 통일을 둘러싼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대립이 있었다. 프로이센 측에는 북독일의 17개의 영방이 가세하고, 오스트리아 측에는 바이에른, 작센, 뷔르템베르크 등이 편들었다. 전투는 H. 몰트케가 이끄는 프로이센 측이 유리한 형세로 진행되어 7월 3일 엘베 강 상류 쾨니히그레츠(현 체코령‒흐라데츠크랄로베) 근교에서 오스트리아 군은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8월 23일에 프라하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결과 독일연방은 해체되고 프로이센은 북독일연방의 맹주가 되어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잡았다.
엥겔스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결과가 독일의 노동자계급에게 지닌 의미로서, 노동자가 입법의회에 직접 자신들의 대표를 보낼 권능을 획득했다는 점과, 독일에서의 혁명의 중대한 적이 프로이센 정부 하나로 좁혀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18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자 유력한 지원군을 잃은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도 프로이센에 굴복함으로써 독일제국이 성립했다. 다른 한편 독일 통일에서 배제된 오스트리아에서는 아우스글라이히 협정이 체결되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각각 자립적인 정부를 갖고 대등한 입장에서 동군연합(同君聯合, Personal union)을 체결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성립했다. -오쓰루 아쓰시(大津留厚)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