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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교육] (Mädchenbildung)

근대 독일의 여자 교육에서는 남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중학교(초등교육)에서의 취학 의무의 보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남성우위'의 원칙이 관철되었다. 그것은 근대 산업사회의 전개에 따라 노동에서의 '성별 분담'의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다. 요컨대 남성은 '밖'에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에 종사하고, 여성은 '안'에서 육아 · 가사라는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노동에 종사한다는 평가였다.

이러한 가운데 여자의 공립 중등학교도 등장하게 되었다. 1800년에는 독일 전체에서 6개교였지만, 1820년대까지 18개교, 40년대 말까지 28개교, 60년대 말까지 37개교, 80년대 말까지 76개교가 설립되어 95년에 이르러서는 총수 196개교가 되었다.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1901년에는 656개교에 달했다. 이러한 학교들은 대개 상층시민(교양시민이나 부유시민)의 자녀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거기서의 교육은 그녀들이 가정 밖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결혼을 할 것을 상정하고 있었던 까닭에 종교나 외국어(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등) 또는 기예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물론 대학 진학에 필요한 라틴어 · 그리스어와 같은 고전어는 교육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자 중등학교로부터의 대학 입학은 기본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여성해방운동이 이러한 사태를 외면할 리 없었다. '여성의 대학 입학'이 거기서의 주요한 요구사항 중 하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01년에 김나지움과 함께 실업계의 중등학교도 모든 대학 학부에 대한 입학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남성 세계에서 발생한 이 개혁은 여성 세계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왜냐하면 남자 중등학교 중에서 고전어를 배우지 않는 중등학교(고등실업학교)도 대학 입학권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고전어를 배우지 않는 여자 중등학교에 대학의 문호를 닫아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1908년, 여성에게도 대학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에서의 남녀의 동권화가 법제적으로 확립되었다고 해서 교육 현실에서도 그렇게 될 만큼 사태는 단순하지 않았다. 바이마르 시대가 되어서도 1920년대 말까지는 전 대학생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넘지 않았고, 28년에 12%, 31년 16%에 도달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진학률을 단년도로 보면 바이마르 시대에 교육에서의 여성의 해방이 현저히 진전되었음은 확실하다. 예를 들어 프로이센에서의 아비투어(대학 입학 자격) 취득자를 단년도로 보면 1921년에는 전체 취득자 중 여성의 비율은 7% 정도(713명)였지만, 31년에는 23% 정도(5,744명)가 되었다.

-모치다 유키오()

[네이버 지식백과] 여자 교육 [女子敎育, Mädchenbildung]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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