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Manchester)
세계 최초의 산업도시이며 엥겔스가 20년 이상에 걸쳐 살았던 도시. 이 지명은 맨체스터인을 가리키는 맨큐니언(Mancunians)의 기원인 로마 시대의 요새 명칭(Mancunium)에서 유래한다. 맨체스터는 어웰 강과 메드록 강 유역에 펼쳐져 있다. 공업도시가 되기 전에는 500년 이상 모즐리 가문이 소유하는 장원(manor)이었다. 그 때문에 의회에 대표를 보내는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하며, 1832년의 선거법 개정에 의해 비로소 의회에 두 명의 대표를 보내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45년에 맨체스터 시는 모즐리 가문의 장원권을 구입해 독립된 도시가 된다.
산업도시로서의 맨체스터의 시작은 면공업의 발전에 있었다. 장원이었기 때문에 독점적 직인조합이나 상인조합이 존재하지 않아 그 점이 공업도시로서의 발전을 용이하게 했다. 아크라이트가 최초의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면 공장을 건설한 것이 1789년이었다. 그 후 1802년이 되면 52개의 면 공장이 건설되어 있으며, 1830년에는 그 두 배의 숫자가 된다. 이러한 공장의 증가와 더불어 도시인구도 급격히 늘어난다. 1774년에는 인구 2만 2,481명이었던 것이 1841년에는 31만 1,263명으로 팽창하며, 인접한 샐퍼드를 포함하면 인구는 50만 명을 넘어서 있었다.
이러한 인구 증가는 도시의 빈곤을 산출해 간다. 맨체스터 인구의 64%는 노동자계급이고 근린 도시에서는 90%나 되고 있었다. 또한 그 최하층에는 20% 가량의 아일랜드인 노동자가 있었다. 1819년 8월 16일에 세인트 피터스 필드에서 일어난 노동자와 경찰의 충돌은 워털루 전투에 빗대어 피털루 사건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이 사건은 몇 사람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를 낸 참극이었다.
노동운동이 격렬해진 이유는 맨체스터의 노동자계급의 빈곤문제에 있었다. 빈곤 지구는 올드타운, 앤코츠, 딘스게이트, 뉴타운, 가장 빈곤한 지역이라 말해지는 리틀 아일랜드였다. 이들 지역에서의 생활은 비참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케이가 최초의 빈곤조사를 행하며, 그 결과는 『1832년 맨체스터 노동자계급의 도덕적, 물질적 상태』(1832)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 후 맨체스터에 살고 있던 두 명의 인물, 즉 엥겔스와 채드윅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데, 전자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5), 후자는 『영국의 노동자 인구 건강 상태에 관한 보고』(1842)를 저술했다. 또한 프랑스의 『위생학연보』의 빌레르메에게도 영향을 주며, 뷔레의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노동자계급의 빈곤에 대하여』(1840), 포셰의 『영국에 관한 연구』(1845)를 출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당시의 맨체스터에는 코브던과 브라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맨체스터학파가 있어 반곡물법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마토바 아키히로(的場昭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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