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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박람회] ()


목차

  1. 【Ⅰ】 수정궁 탄생
  2. 【Ⅱ】 런던 만국박람회의 대성공
  3. 【Ⅲ】 폐막 후

정식 명칭은 '만국 산업 제작품 대박람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는 런던에서 1851년 5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매주 일요일을 제외하고 141일에 걸쳐 개최되었다.

【Ⅰ】 수정궁 탄생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을 총재로 하는 왕립위원회가 이 거대 이벤트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한 것은 1850년 1월이다. 3월 21일의 밤에 만국박람회 추진을 위한 대연회가 런던 시장의 공관인 맨션 하우스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서 앨버트 공은 내외의 정재계 귀빈들에게 만국박람회 개최의 취지를 밝히고, 만국박람회의 의의는 "전 인류가 현재까지 도달한 발전의 정도를 정직하게 따져 묻고, 그 참된 모습을 비추어내는 것"에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의 평화와 애정과 자발적인 도움이 불가결"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왕립위원회의 조직에서부터 개회일로 설정된 1851년 5월 1일까지는 겨우 16개월, 효율적인 준비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대회장의 설계가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았다. 개회에 임박해서 정원사 출신인 J. 팩스턴이 등장하여 철골구조와 유리로 이루어진 '수정궁(Crystal Palace)'이 탄생하게 되었다.

수정궁은 동서의 길이가 1,848피트, 폭 408피트, 높이 64피트라는 식으로 8을 매직넘버로 삼아 설계된, 모듈(조립식) 방식의 건조물이다. 참고로 이 건물에 사용된 유리의 총량은 대체로 90만 평방피트, 세로 49인치, 가로 10인치의 표준판 유리로 해서 29만 366장에 이른다.

하이드파크의 로튼 로우 일대가 만국박람회장 건설부지가 된다는 것이 공표됨과 동시에 공원 내의 수목벌채에 대한 맹렬한 반대운동이 일어나 한때는 행사진행이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팩스턴의 아이디어로 극복할 수 있었다. 즉 바닥 위 108피트의 높은 반원형의 트랜셉트(transept, 익랑)를 붙임으로써 세 그루의 거대한 느릅나무를 건물 안에 넣도록 기본설계에 수정을 가했던 것이다. 그가 데본셔 공작의 전속 정원 관리자로서 채스워스 저택에 대온실을 만들었을 때의 경험이 여기에 활용된 것이다.

이 트랜셉트로 거대한 느릅나무를 둘러싼다는 아이디어는 수목의 구제라는 점뿐만 아니라 장대한 유리궁전의 옥내 경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트렌셉트와 네이브(nave, 신랑)가 교차하는 중앙부에 만국박람회 전시품의 대표로서 인기를 모으게 되는 크리스탈 유리로 만든 대분수가 설치되어 훌륭한 옥내 정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Ⅱ】 런던 만국박람회의 대성공

1851년 5월 1일, 분수와 한 그루의 거대한 느릅나무를 전경으로 하고 나머지 두 그루를 배경으로 한 유리궁전의 옥내 정원에서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 개회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광대한 옥내 공간에 여왕과 앨버트 공이 임석한 것을 중심으로 내외의 수많은 고관 귀족들이 늘어선 가운데 평화의 제전 개막이 선언되었던 것이다.

이 만국박람회의 출품자 수는 영국 본국과 식민지에서 7,381명, 다른 외국에서 6,556명으로 합계 13,937명, 출품 건수는 10만을 넘었다. 그 전시품들 중에서 유난히 인기를 끈 것은 '코이누르'였다. 106캐럿의 커다란 인도산 다이아몬드로 1850년 초에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상된 이후로 왕실의 소유물이 된 것이었다. 이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전시품의 총 가격은 거의 200만 파운드였다고 한다.

대회장 입장료는 정기권 이외에는 회기 중에 수차례 변동이 있었다. 정기권은 남녀에 따라 다른데, 남성용은 3기니(1기니는 1파운드 1실링), 여성용은 2기니로 정해지고, 정기권 소지자는 전 회기를 통해 입장이 가능한 동시에 개회식에 참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정기권 소지 입장객 총수는 연 77만 3,766명. 개회된 뒤 이틀 동안만으로 한정해서 발매된 1파운드권 입장객은 1,042명, 그 다음으로 5실링권(발매일 연 28일) 입장객 24만 5,389명, 2실링 6펜스권(발매일 연 30일) 입장객 57만 9,579명, 그리고 1실링권(발매일 연 80일) 입장객 443만 9,419명으로 총 합계는 603만 9,195명, 하루 평균 4만 2,831명이라는 성황이었다.

만국박람회가 141일이라는 회기를 통해 얻은 총 수입은 52만 2,179파운드였던 데 비해 지출액은 33만 5,742파운드였고, 따라서 수익금은 18만 6,437파운드라는 결과가 되었다. 그 가운데 500파운드는 회장 설계의 공로자인 팩스턴에게 지급되었다. 오늘날의 금전 감각으로는 이 수익액을 제대로 실감할 수는 없지만 그 장대한 수정궁 건축에 들어간 경비의 총액이 약 17만 파운드였다고 하는 데서 그것을 16,437파운드를 상회하는 수익금의 크기를 상상할 수 있다. 

준비 기간이 짧았었던 데다가 여러 가지 장애 요인이 있어 국회의원 중에는 십소프 대령처럼 마지막까지 박람회에 대해 집요하게 적의를 불태웠던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51년의 런던 만국박람회는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이른바 '기아의 40년대'를 극복한 영국은 이 국제적인 거대 이벤트에 의해 대영제국의 위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동시에 팍스 브리태니커를 구가하는 번영의 시대를 향해 전진을 계속하게 된다.

【Ⅲ】 폐막 후

만국박람회 폐막 후 수정궁은 해체되어 좀 더 큰 규모의 철골 유리 건조물로서 런던 남쪽 교외의 시든엄 언덕에 재건되었다. 그리고 팩스턴의 꿈이었던 윈터 가든은 여기서 실현된다(1936년 화재로 소실).

하이드파크에 인접한 켄싱턴 일대의 약 90에이커의 토지에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박람회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과학박물관, 박물학 자료관, 지질학 자료관, 제국 과학기술전문학교, 왕립 미술전문학교, 왕립 음악전문학교, 로열 앨버트 홀 등등. 세계에 자랑하는 이들 과학과 예술의 전당들은 모두 만국박람회의 수익금이 낳은 문화유산이다.

맑스는 런던 만국박람회에 대해 그것이 준비될 때부터 주목하고, 영국이 부르주아적 우주의 데미우르고스(조물주)로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7:450].

-마쓰무라 마사이에()

[네이버 지식백과] 만국박람회 [萬國博覽會]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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