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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봉기] (L'insurrection Lyonnaise )

1831년 11월 21일부터 10일간에 걸친 리옹 견직물공의 봉기와, 1834년 4월에 다시 일어난 봉기를 가리킨다. 리옹은 16세기 이래로 견직물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 점차 리옹 주변의 농촌지대로 산업기반을 옮겨 농촌 가내공업에도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지만, 리옹 시의 견직물업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워 노동자의 임금을 조금씩 악화시켰다. 리옹 시의 견직물업은 상인제조업자라고 불리는 기업가 계층에 의해 생산과 유통이 지배되고 있는데, 1831년의 봉기 당시 그 숫자는 750명으로, 그들은 직기(2~8대)를 소유하는 직장주들에게 배포하고 있었다. 직장주는 각각 직인이라 불리는 노동자를 독자적으로 고용해 자신의 임금과 노동자의 임금을 상인제조업자로부터 수취하여 견포를 짜고 있었다.

1831년 10월에 직장주와 노동자는 협동해서 최저임금 요구를 내놓고 임금표의 개정을 실현한다. 그러나 기업가 측은 정부를 움직여 이 임금표의 무효를 선고하도록 했기 때문에, 직장주 · 노동자의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 진압에 정부는 2만 명의 군인과 황태자인 오를레앙 공과 육군 장관 술트(Nicolas Soult)를 파견했다. 봉기를 지도한 라콩브라는 인물은 직기 6대와 8명의 노동자를 부리는 직장주였다. 1834년 4월의 봉기도 임금문제에서 발단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공화주의의 결사인 '인간의 권리협회'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노동자의 상호부조 조직과의 연대도 볼 수 있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군대와의 대결로 진압되었다.

-기야스 아키라( )

[네이버 지식백과] 리옹 봉기 [-蜂起, L'insurrection Lyonnaise]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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