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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 Romantik)

목차

  1. 【Ⅰ】 형성기
  2. 【Ⅱ】 전기
  3. 【Ⅲ】 후기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된 문학 · 예술 · 사상운동으로, 본래 근대적 원리로서의 이성을 재심에 부치는 그 주장은 혁명기의 시대의 추세를 민감하게 비추어내면서 역사의 변동과 더불어 다음과 같이 변용했다.

【Ⅰ】 형성기

이미 프랑스 혁명 전의 J. J. 루소, 독일에서는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시대의 괴테 등에서 맹아적으로 볼 수 있듯이 그 형성기에서는 전통적 인습으로부터의 자아의 해방이나 자연 회귀를 지향하는 전기 낭만주의(pre-romanticism)가 나타났다. '감정철학'을 설파하고 독일의 젊은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F. H. 야코비이다.

그는 엄격한 칸트적 이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여 이성에 대한 '감정'의 우위를 이야기하고, '신앙의 철학'에 의해 신과의 만남을 개인의 내면적 감정에서 찾았다. 이와 같은 자기감정의 각성에 의해 젊은 지식인들은 전통적 권위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고자 했다. 그 후 프랑스 혁명에 대한 기대로부터 환멸로 시대정신이 변이하는 가운데 근대 원리로서 지배적이었던 이성을 대신하는 원리로서, 그동안 이성의 그늘에 숨겨져 있던 개인의 내면적 감정이나 자연의 생명성 등을 기본적인 모티브로 하여 명확한 주장을 지니는 낭만주의 운동이 자각되기에 이르렀다.

【Ⅱ】 전기

특히 독일에서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초기 낭만주의 운동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어 폭넓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문학 · 예술 영역에서는 Fr. 슐레겔에게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낭만주의'는 '고전주의(Klassik)'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사용되며, 보편적인 질서를 해체하는 창조적인 '아이러니(Ironie)'가 중시되었다.종교 영역에서는 이미 기성 권위가 되어 있던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 개인의 내면적 신앙심을 중시하는 '경건주의(Pietismus)'가 낭만주의의 종교적 정조를 형성했다. 철학 · 사상 영역에서는 이성을 만능으로 하는 계몽사상에 대해서는 '감정'의 복권, 과학 · 기술에 의한 사회의 산업화에 대해서는 근원적인 '자연생명'으로의 회귀가 근대적 원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추구되었다.

초기 낭만주의 운동은 철학적으로는 당초 〈자아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피히테의 '자아철학'에서 거점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러나 '자아철학'은 근대적인 원리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어서 자연생명으로의 회귀라는 또 하나의 모티브를 실현하기 위해 낭만주의는 '자아철학'에 대해 '자연철학'을 그 철학적 원리로서 구성했다. 그 배경에는 산업사회가 서구 전체로 확산되려고 하는 시대 배경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낭만주의적인 '자연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과 다른 것은 근대 자연과학의 실천적 응용으로서의 기술에 의한 자연파괴에 대해 윤리적 반성이 개재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셸링이나 바더 등에 의해 18세기 말에 형성된 '자연철학'의 특징은 근대 역학을 모델로 하는 기계론적인 자연관에 대해 살아 있는 생명을 모델로 하는 유기체론적인 자연관에 있다. 자연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의 전환은 야코비가 불을 붙인 '범신론 논쟁'에 의한 스피노자 범신론('신 즉 자연')의 부활이 사상적 배경이 되고 있다. 이리하여 낭만주의적인 '자연철학'은 스피노자의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의 사상에 기초하여 자연 그 자체 안에 기계론에 의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자기산출성'(셸링)이나 '자발성'(바더)과 같은 무한한 생명력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 후 '자연철학'은 자연과학들의 세분화 · 전문화로 인해 단순한 철학적 사변으로서 배척당하게 된다. 

셸링은 일찍이 19세기 초에는 '자연철학'에서 '동일철학'으로 전환하여 나아가고자 하는데, 거기서 그는 '절대자'를 〈자연과 정신의 동일성〉으로서 내세워 그것을 대립과 모순을 해소하는 '절대적 무차별'로 삼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생명력을 결여한 '형식주의'에 빠졌다. 또한 바더는 초기의 자연철학에 뵈메의 신지학()을 융합해 점차 신비주의적 경향을 강화해 갔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셸링의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낭만주의 비판의 선봉에 섰다.

【Ⅲ】 후기

낭만주의는 그 형성기부터 전기에 걸쳐 근대적 자아의, 즉 '감정'의 발로와 '자연철학'의 창출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내걸었지만 나폴레옹 독재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19세기 전반에 생겨난 복고주의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당초 지니고 있던 발랄한 생명력을 잃고 가톨릭주의로 회귀하는 등 중세의 역사적 과거로 퇴행하게 된다. 프로이센의 근대화 개혁을 비판하고 베를린을 떠난 A. 뮐러는 중세적인 신분제와 길드적 동업조합(Zunft)을 기초로 한 종교국가의 부활을 외치며 메테르니히의 반동체제가 지배하는 으로 갔다. 전기 낭만주의 시대에 활약한 Fr. 슐레겔이나 J. 괴레스 등도 가톨릭주의로 개종하여 활약의 장을 빈에서 찾고 복고주의 입장에서 민족의 역사나 고대신화 연구에 종사했다.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에 영향을 남기고 있던 것은 이러한 복고주의 시대에 나타난 후기 낭만주의이다. 엥겔스는『반뒤링론』에서 초기 셸링 등의 낭만주의적인 '자연철학'에 대해서는 뒤링에 의한 "매음적인 사이비 철학"[20:46]이라는 공격으로부터 옹호하고, 자연의 변증법적인 운동을 전체로서 포괄하는 새로운 '자연철학', 즉 '자연변증법'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의 셸링이나 그를 추종하는 신셸링파, 혹은 바더 등의 후기 낭만주의에서 볼 수 있는 신비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사카 세이시()

[네이버 지식백과] 낭만주의 [浪漫主義, romanticism, Romantik]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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