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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 Civil War in America )

1861-65년에 미합중국에서 일어난 내전. 1860년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된 것을 계기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비롯한 남부 7개 주가 합중국에서 이탈, 1861년 2월 앨라배마 주의 몽트고메리에서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d States of America)에 결집, 신헌법을 제정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에 임명함으로써 남북 양 섹션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같은 해 4월 연방군이 수비하는 섬터 요새에 대한 남부군의 발포로 개전되었다. 

이어서 버지니아를 비롯한 4개 주도 남부연합에 참가, 이후 약 4년간 전쟁이 계속되다가 1865년 4월 남부군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그간에 양측의 사상자는 약 100만 명. 그 중 사망자는 50만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를 웃돌았다. 맑스는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4편, 『프레세』에 26편의 논문을 기고한 것 외에 엥겔스에게 서간을 30통 이상 보내며, 남북전쟁의 동향에 주목하여 그 원인과 역사적 의의에 관해 체계적이고 뛰어난 논평을 남겼다.

남북전쟁의 본질은 '대항해시대' 이래로 18세기까지 진행된 유럽 중상주의 정책의 역사적 산물, 근대 노예제 해체의 미국적 형태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상주의 정책이란 봉건제가 해체되고 있던 서유럽 열강들이 특권적 무역업자를 통해 '대항해시대' 이래로 개발된 글로벌한 상거래를 장악하고, 발흥하고 있던 산업자본의 형성에 필요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달성하고자 한 정책에 다름 아니다. 

이 경우 근대 노예제는 서인도무역의 특산물(사탕, 담배 등)의 생산을 위해 유럽‒서인도‒아프리카를 잇는 삼각무역으로 구입한 아프리카 선주민을 노예로서 사역하고, 체사피크 만()으로부터 브라질에 이르는 카리브해 지역에 발달한 독자적인 생산형태이다. 중상주의시기에 형성된 카리브해 지역의 근대 노예제는 영국 산업혁명 후자유주의 경제사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19세기 전반기에 다양한 형태로 해체되어 갔다. 하지만 합중국에서는 이와는 별도의 독자적인 형태(내전)를 취했다.

우선 노예제는 '자연권 사상'에 의해 부정되는 일 없이 잔존하고 '세계의 공장'으로서 발달하기 시작한 자유주의시기의 영국 면업 자본이나 국내 면업 자본을 위해 그 주요 원료인 면화를 공급하는 특수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원면의 수출은 이 시기 수출 총액의 2분의 1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남부는 '면화는 왕(Cotton is King)'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남북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관세논쟁 등이 아니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1840년대에 취득된 새로운 영토를 '자유로운 노동'을 위한 토지로 할 것인지, '노예제'의 토지로 할 것인지를 둘러싼 정치문제였다. 1840년대는 장기불황기였을 뿐만 아니라 이민이 격증한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북부의 근로자는 이들 새로운 토지(공유지)의 무상 불하를 요구했다. 다른 한편으로 노예무역의 금지(1808년) 후에 노예의 안정적인 공급을 자연적인 증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남부의 농장주들은 리스크와 코스트가 드는 노예의 육성에 대한 부담을 생산성이 높은 비옥한 처녀지의 획득으로 만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북전쟁의 결과 노예제는 폐지되었다(수정헌법 13조). 성인남성에게 160에이커의 공유지를 무상 불하하는 것을 규정한 자영농지법도 제정(1862년)되었다. 그것은 북부의 근로민중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남북전쟁으로부터 재건시기에 기반을 확립한 공화당 정권의 과제는 노예제의 폐기 후에 어떠한 국민국가를 형성하는가에 놓였다. 국법은행제도의 설립에 따른 안정된 은행제도의 정비. 보호관세정책의 확립에 의한 신흥 철강산업의 육성. 전비 조달의 하나의 편법으로서 발행된 합중국 지폐를, 금 태환()을 전제로 한 발행 속행에 의한 은행 준비의 공급. 농업기술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설치를 목적으로 한 주 정부에 대한 공유지의 불하. 대륙횡단철도의 설치를 위한 연방정부의 지원 등이다. 

맑스는 링컨에 의한 '노예해방선언' 발포(1863년 1월)를 반기면서 그의 재선에 축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 시기 미국에서의 개혁이 맑스가 기대한 만국의 노동자들의 연대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는 귀결되지 못하고자본주의가 크게 진전되는 계기로 끝난 이유는 바로 재건기에 시도된 위에서 언급한 국민경제 확립을 위한 정책이 이와 같은 움직임을 봉쇄할 정도로 강력하고 체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구스이 도시로()

[네이버 지식백과] 남북전쟁 [南北戰爭, Civil War in America]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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