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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지움(제도)] (Gymnasium)

목차

  1. 【Ⅰ】 김나지움의 성립 배경
  2. 【Ⅱ】 김나지움의 교육 내용
  3. 【Ⅲ】 김나지움의 문화적 · 사회적 기능


【Ⅰ】 김나지움의 성립 배경

김나지움은 대학 입학 자격의 수여권을 1901년까지 거의 독점적으로 차지하고 있던 중등학교이다. 그 성립 배경을 근대 독일의 교육체제를 주도한 프로이센에 입각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김나지움은 18세기 말 프로이센에서의 대학 진학 억제책으로서 등장했다. 당시의 대학은 절대주의 국가를 위한 관리 · 성직자 · 의사 등의 소수 엘리트를 양성하는 장이었는데, 일정한 입학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입학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청년들이 병역을 피하기 위해서도 대학에 입학하고, 결국에는 졸업해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하여 사회불안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정부 당국은 대학 진학을 억제하기 위해 김나지움이라는 9년제 중등학교를 설치하고, 이곳의 졸업시험 합격을 대학 입학의 자격요건(아비투어{Abitur}라고 부른다)으로 삼았다. 하지만 당초에는 대학의 독자적인 입시도 존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를 취득한 경우에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특혜 조건을 설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 진학 억제책으로서는 충분치 못했다. 대학에 의한 독자적인 입시가 폐지되고 김나지움이 대학 입학 자격의 수여권을 명실상부하게 독점하게 되는 것은 1834년의 일이었다.

【Ⅱ】 김나지움의 교육 내용

이렇게 해서 설립된 김나지움에서는 어떠한 교육이 실시되었던 것일까? 그 커리큘럼의 형성을 살펴보면서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프로이센 정부는 김나지움을 설립함에 있어 당시 존재했던 라틴어학교 중에서 설비와 교원이 충실한 곳을 김나지움으로 격상시켰다. 라틴어학교란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던 곳들의 총칭인데, 주로 교회 등이 성직자 양성의 예비교육 시설로 하고 있었던 곳으로서 라틴어로 성서의 강독 등을 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설립 배경은 김나지움의 교육 내용에 라틴어 우위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그에 더하여 김나지움의 교육 내용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19세기 초엽에 교육개혁이 단행되어 김나지움에 관한 법률적 정비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신인문주의의 깃발 아래 그리스 · 로마문화가 이상으로 간주되고, 그것을 배움으로써 인간성의 전면적인 개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정신운동의 일환으로서 교육개혁이 착수되었다. 이것은 김나지움의 교과 과정에 반영되어 고대 그리스 · 로마의 고전을 고전어(그리스어 · 라틴어)로 학습하는 교육이 중시된다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같은 김나지움에서의 고전어 중시는 더 나아가 지적 세계 일반에서 고전어가 차지하고 있던 중요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다. 고전어, 특히 라틴어는 일찍이 중세에서는 지식인과 성직자의, 즉 학문과 교회의 언어로서 군림하고 있었다는 전통이 있고, 이미 19세기에는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사어()'이긴 했지만 여전히 '교양인의 언어'로 간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김나지움의 커리큘럼에서는 고전어, 특히 라틴어의 학습(수업시간 수 전체의 약 30%)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 · 로마의 고전문화의 흡수가 중시되고, 역으로 영어는 없고 프랑스어나 자연과학은 몇 %와 같은 실학적 교과의 경시라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또한 고전문화는 독일 근대문화를 대표하는 괴테의 문학이나 칸트 철학의 원류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교육이 지향한 것이 바로 독일 교양주의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회적으로는 공업화의 진전에 따른 실학의 효용이 증대하는 가운데 분명 고전어의 비중은 약간 줄어들고 있었지만, 고전어 중시라는 커리큘럼의 기본적 성격은 그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Ⅲ】 김나지움의 문화적 · 사회적 기능

이와 같은 교육 내용을 지닌 김나지움이 대학 입학 자격의 수여권을 독점하게 되자 그 문화적 · 사회적 영향은 엄청났다. 근대 독일의 대학은 관리 · 성직자 · 의사, 대학이나 김나지움의 교사라는 정치 · 사회 · 문화의 엘리트적 담당자 양성의 장으로서, 각각 법학부 · 신학부 · 의학부 · 철학부에서 전문적 지식이 교육되고 있었다. 근대 독일에서는 이러한 대학 수료자를 교양시민층이라 부르고, 기업가나 상인 등의 경제시민층과 구별된 보다 높은 사회적 위신을 지닌 존재로 간주하고 있었다. 김나지움은 이와 같은 대학의 이를테면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김나지움은 교양시민층의 생산 메커니즘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며, 그 교육은 교양시민층의 교양 목록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김나지움의 진학률에 관해 언급하기로 하자.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 동일 세대의 3~4%이고, 바이마르 시기에서도 본질적 차이는 없었다. 게다가 9년 동안 재학하고 졸업시험에 합격하여 아비투어를 취득한 자는 동일 세대의 2%를 넘지 않았다. 이를테면 김나지움 진학자는 소수 엘리트이고, 아비투어 취득자는 한층 더 극소수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상과 같은 체제는 기본적으로 1901년까지 존속했다. 이 해에 김나지움 이외의 실업계 중등학교에도 전 학부의 아비투어 수여권이 인정되어 김나지움의 아비투어 독점은 붕괴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법률상의 대등화일 뿐이어서 교육사회의 현실에서도 대등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바이마르 말기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치다 유키오()

[네이버 지식백과] 김나지움(제도) [-(制度), Gymnasium]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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