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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주의 논쟁(修正主義 論爭)] (Revisionism Dispute)

I. 개념. 수정주의의 개념을 정확히 규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량주의와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개념이 무차별적으로 혼용될 경우 수정주의에 대한 개념적 이해는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베르너 호프만의 개념 규정은 대단히 유익한 지침을 제공한다. “개량주의의 개념은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천적인 입장을 가리킨다..... 개량주의는 사회질서 내부에 존재하는 제반 문제점들을 이 질서 속에서 해결하고자 시도한다.....따라서 개량주의는 기존 사회의 개량에 스스로를 한정시킨다. 개량주의 내부에서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나 그 기초 위에서 계속 사고한다고 주장하는 하나의 노선으로서 수정주의'가 등장한다. 모든 개량주의가 동시에 수정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수정주의는 오히려 그가 수정하고자 하는 것과의 관련성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영국의 페비안 사회주의는 애초부터 마르크스의 이론에 기초하지 않았고 따라서 수정주의로 간주될 수 없다. ’개량주의'란 말하자면 수정주의보다 포괄적인 상위인 개념인 것이다.'' 수정주의란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체계를 수정'함으로써 결국에는 개량주의적 세계관과 실천전술에 귀착하는 신조체계를 일컫는다. 이러한 개념 설정에 의거하여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적 시도를 다음과 같이 개념화할 수 있다. 첫째,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일단 변화된 시대상황에 직면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재검토하고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 베른슈타인은 현실을 이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현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의미에서 이론과 실천의 합일을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의 역사상 최대의 수정주의자들이었다"는 베른슈타인의 자의적 단정은 이론의 수정이 아니라 현실의 수정, 즉 변혁을 지향한 이 두 혁명가의 기본의도를 왜곡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당시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개량주의적 실천의 이론적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수정주의를 "개량주의란 명칭이 그에 부합하는 최선의 표기임이 널리 용인 되고 있는 그러한 실천의 이론"으로 규정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개량주의자들은 이론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론을, 즉 당의 공식적 이데올로기를 수정하지 않고도 개량주의적 실천활동을 계속 전개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 베론슈타인 수정주의의 생성 배경. 1890년대에 들어서면 유럽의 사회주의정당들 내부에서는 한편으로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의 수정을 목표로 하는 특수한 이데올로기적 조류가 형성된다. 1880년대의 경기침체와 실업고조는 자본주의의 조속한 몰락을 기대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던 반면에, 1895년 무렵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경기고양은 수정주의적 제반 시도들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호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민주주의에 영함을 끼쳤다. 첫째, 그것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역설하는 혁명적 구호와 강령의 허구성을 폭로함으로써 독일 노동계급의 혁명의지와 계급의식을 잠식해들어 갔다. 둘째, 경제상황이 점차 호황국면에 접어들게 되자 자본주의의 필연적 위기를 법칙적으로 해명하는 마르크스의 기본적 교리들에 대해 강한 회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가 등장하게 되고 이는 곧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안팎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베른슈타인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제2차인터내서널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고 더구나 엥겔스의 개인 비서와 유언집행인까지 역임한 인물이었던 관계로 그의 수정논의는 대단한 충격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한마디로 기존의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에 대한 과격한 거부에서 출발하는 혁명적 이론과 기존 질서의 범주내에서 일상적이고 점진적인 정치경제적 개선을 도모하는 개량적 실천 간에 내재하는 모순의 산물이었다. 베른슈타인은 1890년대에 들어서서 자본주사회의 실제적인 발전 과정과 당시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지배하고 있던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체계를 상호 비교, 검토하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1895년 엥겔스가 죽을 때까지는 대체 로 그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혁명주의의 영향하에 놓여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베른슈타인의 최초의 논문 시리즈인 <사회주의의 제문제 Probleme des Sozialismus>1896년에서 1898년에 걸쳐 <<신시대 Neue Zeit>>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논쟁을 야기한 것은 1899년에 출판된 <<회주외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Die Voraussetzugen des Sozialismus und die Aufegaben der Sozialdemokratie>>라는 저서 였다.

 

. 베른슈타인 수정주의의 본질. 1895년 이래의 경제호황을 체험하면서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토대로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적응력을 확신하게 된다. 그의 비판은 우선 무엇보다도 급증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궁핍화와 그와 밀접히 관련된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 심화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하는 자본주의 사회질서의 조속한 붕괴에 대한 이론적 예측에 집중되었다. 베른슈타인 수정주의의 본질은, 첫째 사회경제적 측면, 둘째 철학적 차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제시하는 정치적 대안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관찰할 수 있다. (1) 베른슈타인은 생산의 증가와 더불어 실질임금의 상승과 대중소비의 확대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소시민으로의 상승과 중간계층의 유지, 존속을 오히려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산업이나 농업 분야에서 궁핍의 축적은 발생할 수 없다. 또한

주식희사의 설립으로 자본소유자의 수는 늘어난다. 이러한 관측에 기초하여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심화를 차단시키는 억제력이 존재함을 의심치 않았다.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적 위기의 관리능력을 특히 근대적 신용제도의 유연성, 교통·통신의 발달을 통한 신속한 정보교환, 카르텔·트러스트의 독점적 관리, 세계시장의 확대 등에서 도출하고 있다. 바로 이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을 완화·통제하고,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 빚어내는 제반 위기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처를 가능케 함으로써 전면적 공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요인들이라고 본 것이다.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적 탄력성과 적응력을 보장하는 두 번째의 안정요인으로서 점증하는 사회적 분화를 들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사회 발전에 관한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의 기본입장과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베른슈타인은 <<공산당선언>> 에서의 예언과는 달리 재산소유자의 수는 소수로 집중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부가 거대하게 측적되어가는 것은 수적으로 축소되어가는 자본귀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정도로 증가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또한 경제집중의 강화와 대량화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예측된 중소기업체의 소멸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베른슈타인은 유통 및 상업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 분야에서까지도 소규모 중소기업체는 계속 생존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 한다. 아울러 그는 노동계급 내부의 동질화 및 평준화 현상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노동계급 내부의 집단들 간에 계층적 다변화와 위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연대감도 약화되어간다. 뿐만 아니라 특히 사무직원과 공무원으로 이루어지는 신중간층이 확고한 기반 을 닦아나간다. 그러므로 이들이 마침내 프롤레타리아화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단정적 예언은 철회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중간계층은 소멸할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필수적인 사회계급 및 정치요소로서 노동계급의 동맹대상으로 포섭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베른슈타인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비판에서 출발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본질을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는 경제적 규정성의 논리뿐만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 그 자체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베른슈타인에게는 대부분의 그의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에 대한 정확한 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변증법을 순수하게 경험적으로 자연과학적 발전의 측면에서 해석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를 통한 역사의 필연적 변혁과 개조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베른슈타인은 필연성 Notwendigkeit'결정성 Determiniertheit'의 차이를 숙지하지 못하고 양자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필연성이란 객관적 법칙성과 주관적 의지의 합성물인 반면 결정성이란 주관적 의지나 목표설정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자연과학적 법칙성을 의미한다. “유물론자는 신없는 칼빈주의자"라는 경솔한 언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른슈타인은 변증법적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을 단순히 예정조화적 결정성'에 대한 신봉으로 천박화 시키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변증법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변증법의 무가치성을 도출해내는 베른슈타인의 이러한 오류는 아마도 당시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지배하고 있던 카우츠키주의'의 작태, 즉 자본주의의 자동붕괴를 기다리면서 하등의 변혁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정치적 무력증을 비관하기 위해 성급히 동원된 이론적 경솔함 탓인 듯하다. (3)이러한 수정된' 관점에 입각하여 베른슈타인은 기존의 개량주의 적 실천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그는 혁명적 행동을 통한 기존 사회 질서의 변혁 대신에 파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옹호하였다. 그는 사회주의로의 사회의 성장 진입 Hineinwachsen der Gessellschaft in den Sozialismus' 다시 말해 사회의 각 부문과 조직의 꾸준한 성장을 통한 사회주의의 점진적 실현을 꿈꾸었던 것이다. ’최종목표 Bewegung'운동 Endziel' 간의 상호관련성에 관한 그의 유명한 진술도 바로 이러한 기본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사회주의의 최종목표에 대해 전혀 의미를 부여 하지 않으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 목표는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무()이다. 그리고 운동만이 전부이다. 운동은 사회의 일반적인 운동, 즉 사회적 진보와 이 진보를 기약시키는 정치, 경제적 선전과 조직을 의미한다." 베른슈타인이 특히 최종목표'운동'을 이처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의 필연적 도래, 최종목표'를 주문처럼 읊조리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하등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카우츠키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의 정치적 불능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베른슈타인이 말하는 운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개량적이고 점진적이며 평화적인 사회적 민주화 노력을 뜻한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운동'의 구체적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회민주주의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수행해야만 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훈련시키는 일이며 그들을 향상시키고 국가체제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기에 적합한, 국가 속의 모든 개량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따라서 베른슈타인에게는 민주주의의 쟁취'민주적 정치, 경제조직의 육성'이야말로 사회주의 실현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바로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수단이며 동시에 사회주의가 일단 실현되면 그것이 수용할 형태"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란 사회주의의 '수단이자 동시에 최증목표'인 것이다.

 

. 수정주의를 둘러싼 논쟁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독일 사회민주주의 안 밖으로 격렬한 비난과 충격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사실상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자 했던 당내 개량주의적 유파들도 비록 그들이 당의 공식적 이데올로기를 비난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이론적 논쟁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베른슈타인에 대해 역시 버판적 자세를 견지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론적' 수정주의자인 베른슈타인과는 달리, 당의 혁명적 교리가 그들의 실제적인 개량주의적 당 실천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들은 그러한 이론적 논쟁이 오히려 당의 분열을 자초할지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사회 민주주외와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체계를 옹호하기 위해 가장 열렬히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공격한 사람은 특히 로자 록셈부르크였다. 그녀는 1900년에 발 표된 <사회개량인가 혁명인가 Sozialreform oder Revolution?>라는 논문을 통해 당시 국제 사회주의운동의 주도적 인물의 하나로 지목받던 베른슈타인을 가장 성공적으로 설득력 있게 비판함으로써 순식간에 엄청난 이론적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개량을 위한 투쟁은 수단 이고 사회적 변혁은 목적이기 때문에 사회개량과 사회혁명 사이에는 불가분의 상관관계가 내재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녀는 베른슈타인이 사회 민주주의의 최종목표인 혁명을 포기하고 사회개량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말하자면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적 질서의 실현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질서의 개량화, ()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폐해의 제거만을 목표로 한다"고 못박았다. 이러한 개괄적인 비판에서 출발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반적 경제위기의 소멸, 중산층의 견결성 그리고 노동계급의 정치·경제적 지위의 상승으로 집약되는 자본주의적 적응력과 탄력성에 대한 베른슈타인의 신념을 공락하고 있다.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베른슈타인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세 지주’, 즉 심화되는 자본주의 경제의 무정부성, 계속되는 생산 과정의 사회화 그리고 점증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계급의식의 필연적 법칙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신용제도의 발전과 확산은 오히려 소수의 손에 생산자본을 집중시킴으로써 생산력의 급증을 초래하고 또한 특정 산업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과잉투자와 주식, 증권 등에 대한 무분별한 투기를 조장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무정부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 단언한다. 뿐만 아니라 로자는 베른슈타인과는 반대로 카르텔과 트러스트는 여타 산업이나 기업의 희생 위에 독점이윤을 장악해 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국내에서 확립된 독점체제는 오히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따라서 카르텔과 트러스트는 경제위기의 필연적 동인이며 나아가서는 자본주의를 마지막 단계로 몰아가는 증후군으로 인식된다. 로자는 베른슈타인이 노조활동, 사회적 개량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를 통해 달성되리라 확신했던 사회주의로의 사회의 성장 진입'에 관한 그의 낙관적 기대 역시 날카롭게 거부하고 있다. 우선 베른슈타인이 노조활동을 통해 기업가의 이윤으로부터의 임금인상이 쟁취되고 그와 함께 사회적 생산물에 대한 노동자의 몫이 증대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로자는 노조의 기능이 순수하게 방어적 본성만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한다. 그녀는 중간계급의 프롤레타리아화의 결과인 노동자의 양적 팽창과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사회의 총생산물에 대한 노동자의 몫을 끊임없이 감소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두 개의 기본경향임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활동범주에서 상당한 원천적인 제약을 지닐 수밖에 없다. 노조는 단지 자본주의적 착취의 조절과 임금투쟁 그리고 노동시간의 단축 등만을 목표로 할 수 있을 뿐, 그의 생산과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원천 봉쇄되어 있을 따름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러한 노조활동의 숙명적 한계를 시지푸스의 도로 Sisyphusarbeit'라는 말로 경멸해버린다. 뿐만 아니라 기존 국가는 자본의 생산과정을 자본의 계급조직이 통제하는' 계급국가이기 때문에 사회개량 역시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개량을 통한 사회주의사회로의 평화적 이행은 몽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배척당한다.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일각에서 수정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그토록 격렬하게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원대중은 이러한 이론투쟁에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당시 독일 사회민주주의가 앓고 있던 지병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이었나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폭풍우를 동반한 격랑 속에서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창출해내지 못한 채 표류를 거듭한다. 1차세계대전은 그 파산과 침몰을 예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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