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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농민주독재론 ] (Labour - farmer Democratic dictatorship)

레닌 : 우리의 눈앞에서는 2개의 세력, 다름 아닌 두 세력의 투쟁, 생사를 건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투쟁대상이 츠아의 전제냐, 그렇지 않으면 인민의 전제냐 하는데 귀착되기 때문이다. 이 두개의 세력이란 혁명과 반혁명이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1) 이들 사회적 세력의 계급적 내용은 어떤 것인가? (2) 현재 그들 투쟁의 현실적 내용, 경제적 내용은 어떤 것인가? 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들 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답(이 해답은 상세하게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은 다음과 같다. 혁명적 세력 ——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혁명적 소부르주아지의 주요 대표자로서의 농민, 인텔리겐차의 혁명적 의의의 미소성(微小性). 승리의 혁명 ——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적 독재. 변혁의 내용—— 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창설. 이를 그 경제적 의의에서 본다면 (1) 자본주의의 발전을 자유롭게 하는 것, (2) 농노제의 잔존물을 일소하는 것, (3) 주민대중, 특히 그 하층의 생활수준과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 것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승리와 혁명, 1905, 레닌전집 제8권, p.452).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에는 세상의 모든 것처럼 과거와 미래가 있다. 이의 과거는 전제・농노제・군주제 그리고 특권이다. 이 과거와의 투쟁, 즉 반혁명과의 투쟁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의지의 통일’이 가능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양자의 이해에 통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미래에는 사적소유에 대한 투쟁, 임금노동자와 고용주와의 투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 있다. 여기서는 의지의 통일이 있을 수 없다. 이 경우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전제로부터 공화제로의 길이 아니고 소부르주아적인 민주공화제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길이다. (민주주의 혁명에 있어서의 사회민주당의 두 가지 전술, 1905, 레닌전집 제9권, p.78).
1917년 2월~3월 혁명이전의 러시아의 국가권력은 하나의 낡은 계급, 즉 니콜라이 로마노프 (Nikolai Romanov, 1868〜1918, 러시아 최후의 황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농노주적(農奴主的)・귀족적 지주계급(地主階級)의 손에 있었다. 이 혁명 후에는 다른 새로운 계급, 즉 부르주아지의 손에 있었다. 혁명이라는 개념의 엄밀한 과학적 의의에 있어서나 그 실천적 = 정치적 의의에 있어서도 국가권력이 한 계급의 손으로부터 다른 계급의 손으로 넘어가든 것이 혁명의 첫 번째 중요한 기본적인 표식이다. 이 범주 내에서라면 러시아의 부르주아혁명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끝났다. 이점에 관하여 즐겨 ‘고참 볼셰비키’라고 자칭하고 있는 반대자들이 떠들어대는 것이 들린다. 가로되, 우리는 항상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끝나게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인 토지혁명은 과연 끝난 것인가? 오히려 토지혁명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라고. 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볼셰비키의 슬로우건과 사상이 올바른 것이었음이 일반적으로는 역사에 의해 완전히 확증되었으나 구체적으로는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탓으로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를 가진 보다 독특한, 보다 특이한, 보다 복잡한 형태를 취했다고. 이 사실을 무시하거나 잊었다면 새로운 생생한 현실의 특이성을 연구코자 하지 않고 무턱대고 암기하기만 했던 공식을 무의미하게 되풀이하여 우리 당의 역사상 이미 여러 차례 비참한 역할을 연출했던 ‘고참 볼셰비키’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가 러시아혁명에서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공식’은 제 계급의 상호관계를 예상한 것에 불과하고 이 상호관계, 이 협동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정치적 기관을 예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자・병사대표 소비에트’——이것이야말로 생활에 의해 이미 실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이다. 이 공식은 이미 낡아 빠지고 말았다. 생활은 그것을 공식의 나라로부터 현실의 나라로 옮겨 피와 살로 싸서 구체화하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이를 수정한 것이다. 지금 일정에 올려져 있는 것은 이미 별도의 새로운 임무이다. 즉, 이 독재 내부의 프롤레타리아적 분자(조국방위에 반대하고, 코뮨으로 옮겨가는 것에 찬성하고 있는 국제주의적 ‘공산주의적’분자)와 소경영주적 또는 소부르주아적 분자(티헤이제・츠에레테리・스테크로프・에스에르 기타 혁명적 조국방위파, 코뮨으로의 길을 반대하는 사람들,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정부를 ‘지지’하는데 찬성하는 사람들)를 분열시키는 임무이다. 지금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만을 논하는 자는 생활에 뒤떨어진 사람들, 그 덕분으로 실제상 프롤레타리아적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지 편으로 옮겨간 사람들로서 혁명전 ‘볼셰비키’고물보관소(‘고참 볼셰비키’ 보관소라고 해도 된다) 에라도 수용해야 할 작자들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는 이미 실현되고 있지만 그러나 극히 독특한 방법으로 몇가지 매우 중요사항의 수정 하에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전술에 관한 서신, 1917, 레닌전집 제24권, PP. 27〜29).

트로츠키 : 분명히 레닌은 2월 혁명 초기의 노동자・농민・병사・대표의 소비에트가 어느 정도까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민주주의적 독재를 구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소비에트가 일반적 권력을 구현했다는 범위 내에서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레닌이 가끔 되풀이하여 설명한 바와 같이 2월혁명 때의 소비에트는 단지 반(半)권력을 구현한 데 불과했다. 이러한 소비에트는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하여 반(半)반대파적(反對派的) ‘압력’을 가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노동자・농민・병사의 민주적 연합의 테두리를 넘는 것을 용서하지 않은 것은 실로 이러한 중간적인 입장 때문이었다. 그 지배 형태에 있어서 이 연합은 법률화된 지배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무장한 힘과 직접적인 혁명적 관리에 의존했다는 정도에 있어서 독재적 경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독재와 아득히 먼 것이었다. 협조주의적 소비에트의 불안정성은 정확히 말한다면 노동자・농민・병사의 반(半)권력적 연합인 그러한 민주적무형성성(民主的無定形性)에 기초한 것이었다. 소비에트는 완전히 소멸되지도 않았고 실제의 권력을 장악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제 정당에 의해 대표되었던 노동자・농민의 민주적 연합의 상태에서가 아니라 단일정당에 이끌려 처음엔 반(半)프롤레타리아 부분을, 이어서 농민대중을 끌어당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서였다. 바꾸어 말하면 노동자・농민의 민주적 연합은 진정한 권력을 획득치 못한, 권력의 미성숙 형태로서 밖에 그 모습을 취하지 못하고 구체적 사실로서는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10월의 교훈, 1924, 트로츠키선집 제5권, P. 81).
1905년 이래 볼셰비키당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적 독재’라는 슬로우에 전제주의에 대한 투쟁을 해왔다. 이 슬로우건과 그 이론적 배경은 레닌에게서 나왔다. 멘셰비키의 이론가 플레하노프는 ‘부르주아지 없이 부르주아혁명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잘못된 관념’에 집요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멘셰비키와는 반대로 레닌은 러시아 부르주아지가 그 자신의 혁명을 지도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긴밀한 단결만이 제정과 지주에 대한 민주적 혁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닌에 의하면 이 단결에 의해 민주적 독재와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과 날카롭게 대조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사회주의 사회의 수립이 아닐 뿐 아니라 이러한 사회에의 과도적 형태의 수립조차도 아니고 단지 중세주의라는 오쟈스왕의 외양간 (3,000 마리의 소를 사육하면서도 30년간 한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을 허큘리스가 하루에 청소했다는 희랍신화로서, 매우 불결한 것에 대한 비유)처럼 철저한 청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투쟁의 목표는 민주적 공화국, 토지・재산의 몰수, 여덟시간 노동제라는 세 가지 슬로우건에 충분히 나타나 있다. —— 이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우화, 지구를 짊어지고 있다는 세 마리의 고래에 비유하여 세간에서는 볼셰비즘의 세 마리 고래라고 불렀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적 독재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는 농민이 그들 자신의 혁명을 달성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바꾸어 말하면 제정과 토지귀족을 청산할 신정부를 수립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 달려있는 것이 다. 과연 민주적 독재의 슬로우건은 노동자 대표가 혁명정부에 참가하는 것을 상상했다. 그러나 이 참가는 농민혁명의 제 문제 해결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좌익적 동맹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사정 때문에 미리부터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주혁명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에 관한 일반적이고 공식적으로 승인조차 되어 있는 통념은 다음을 뜻하는데 불과했다. 즉, 노동자의 당은 자기의 무기고에 있는 정치적 무기를 가지고 농민을 원조하고, 봉건사회를 청산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방법을 그들에게 암시하며, 이러한 수단방법을 여하히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그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어쨌든 부르주아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이 언급됐다 해도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의 의지에 따른 그 자체의 역사적 임무——바꾸어 말하면 사회주의적 사회로의 직접 이행을 일정에 올리기 위해 농민반란을 이용한다는 것을 전혀 의미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혁명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와 엄격히 구별되었고 그리고 논쟁에 있어서는 그것과 대비되었다. 볼셰비키당은 1905년 봄부터 계속 이러한 관념에 의해 교육되어 왔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사, 제2권, 1930, pp. 129〜130).
1905년, 그것은 레닌에게 계급투쟁의 현실 속에서 검증되어야 할 전략적 가설의 문 제였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독재 라는 공식은 고의로 대수학적(代敎字的) 성격을 띠고 있었다. 제기된 민주적 독재의 두 참여자, 즉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과의 정치적 관계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레닌은 사전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레닌은 농민이 혁명에 있어서 독립된 정당에 의해 대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독립이라는 2중의 의미에서였다. 즉 부르주아지로부터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로 부터도 독립하고 동시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당과 동맹하여 민주적 혁명을 실현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곧 보게되는 바와 같이 레닌은 혁명적 농민의 당이 민주적 독재정부에서 대다수를 구성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부르주아혁명의 운명에 있어서 농업혁명의 결정적 의의라는 문제에 관하여 나는 적어도 1902년 가을이래, 즉 내가 처음으로 국외에 망명 한 때부터 레닌의 제자였다. 농업혁명, 따라서 전반적인 민주혁명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에 대해 투쟁할 노동자와 농민의 단결된 세력에 의해서만 실현이 가능하다. 이는 최근 수년간의 모든 어리석은 우화와는 반대로 나에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적 독재’ 라는 공식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참된 독재 란 어느 계급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를 미해결인 채로 두고 있다는 결점을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농민이 그 거대한 사회적・혁명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당을 만들 능력이 없으며 더구나 그 수중에 혁명적인 힘을 집중시킬 능력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 이후 그리고 그 이전의 제 혁명에서 농민이 봉기하여 도시부르주아의 한 분파를 지지했던 탓으로 여러 차례 승리를 확실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지연되고 있는 부르주아혁명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가장 고조된 순간에 농민이 똑같은 지지를 보이고 그 권력탈취를 돕는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부르주아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지지에 의해 혁명적 독재권력을 그 수중에 장악했다는 사태가 일어나야만 비로소 그 임무를 급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연속혁명 서론, 트로츠키선집 제5권, pp. 16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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