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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혁(李雲赫, 1895~?) 春秋 崔光植 金玉山] ()

(고려공산동맹 함북 책임자) 함북 경성 출신으로 고향에서 보통학교 및 함일실업학교(咸一實業學校)를 졸업했다.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여 함북도청, 경성군청에서 근무했다. 1919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함북연통제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10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동아일보』, 『신건설』 경성지국을 운영했다. 1923년 3월 전조선청년당대회에 경성청년회(鏡城靑年會) 대표로 참석했다. 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0월 고려공산동맹에 가입하여 함북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1925년 4월 전조선노농대회 준비위원이 되었다. 사상단체 전진회(前進會)에 가입했다. 12월 고려공산동맹의 코민테른 파견 대표로 선임되어 모스끄바에 가서 조선공산당의 코민테른 가입문제에 관한 고려공산동맹의 입장을 전달했다. 1926년 봄 고려공산동맹 교섭 대표의 일원으로서 조공과 통일문제를 논의했다.
(조공 중앙위원, 조공 재건운동 지도자) 1927년 7월 조공에 입당했다. 12월 조공 제3차 대회[春景園黨]에 참석하여 정치부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5월 일본경찰의 검거로 인해 파괴된 당중앙위원회를 이민용(李敏用), 방한민(方漢旻), 이준열(李駿烈)을 보선(補選)함으로써 재구성했다. 그후 소련으로 피신했다. 1929년 초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서울상해파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조공 재건운동 방법에 관해 협의했다. 조공 재건운동 중앙기관의 위치문제를둘러싸고 서울상해파 다수파와 의견대립이 빚어지자, 조공재건설준비위원회 결성에 불참했다. 3월 이기순(李基淳), 김세권(金世權)을 국내에 파견하여 서울의 후계중앙위원회와 협의한 뒤, 독자적으로 조공재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1930년 귀국했다. 자신의 공산주의자그룹이 코민테른으로부터 ‘종파’로 규정되었음을 확인한 뒤, 조공재조직준비위를 해소하고 조공재건설정리위원회로 재편했다. 「민족해방협동전선의 임무 및 조선 무산계급운동의 현단계」를 비롯한 재건운동 테제를 다수 집필했다. 12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32년 9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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