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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梁明, 1902~?) 李江(Lee Kang) 梁健錄 梁建一] ()

(고려공정 책임비서) 경남 통영 거제도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서울에서 고등보통학교를 마쳤다. 1919년 무렵 북경(北京)으로 가서 북경대학 문과에서수학했다. 1924년 북경에서 결성된 혁명사(革命社)에 가입하고 잡지 『혁명』 발행에 참여했다. 1925년 8월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정치부 기자가 되었다. 같은 달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12월 조공 상해부(上海部) 상해야체이까위원이 되었다. 1926년 3월 공산주의운동의 통일을 표방하는 레닌주의동맹 결성에 참가했다. 12월 조공 제2차 대회에 참석하여 중앙위원 후보로 선임되었고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7년 1월 고려공청 책임비서직을 사퇴했다. 8월 무렵 『조선일보』 해외특파원 자격으로 상해로 건너갔다가 10월 귀국하여 조공 선전부 부원이 되었다. 11월 초 김준연(金俊淵) 책임비서로부터 모든 당무와 후계 당조직을 위임받았다. 김세연(金世淵)을 후계 책임비서로 선정한 뒤, 1928년 초 ‘제3차 조공 검거사건’을 피해 중국으로 피신했다. 3월 무렵 조공 정치부 위원이 되었다.
(조공 중앙위원) 1928년 6월 코민테른 제6차 대회 파견 대표로 선정되어 9월 블라지보스또끄를 출발하여 10월 모스끄바에 도착했다. 모스끄바에서 코민테른 동양부 앞으로 조공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조공 지부승인 취소 결정을 번복해줄 것을 촉구하는 글을 작성했다. 12월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조공(ML파) 지도자들과 함께 조공 재결성 방법에대해 협의했다. 북경에서 조공(ML파) 기관지 『계급투쟁』을 발행했다. 1929년 5월 길림(吉林)에서 개최된 조공 재조직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후 중국 관내에서 한위건(韓偉健)과 함께 조공의 선전활동을 전담했다. 1930년 3월 천진(天運)에서 고경흠(高景欽)과 함께 일본 토오꾜오(東京)에 조공 선전활동의 기지를 건립하는 문제를 협의했다. 1931년경 소련으로 망명해서 12월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연구원이 되었다. 1932년 모스끄바에서 「만주사변과 조선, 조선의 민족개량주의에 관해」를 집필하여코민테른 간행물 『민족식민지문제 자료』에 게재했다. 1934년경 모스끄바에서 외국문출판사 한글 담당 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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