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만(金福萬, 1907~?) 金仁國 金秀松 金福突] ()
(조공 만주총국 위원, 고려공청 책임비서) 연해주 니꼴라예프스끄 출신으로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에서 사상단체 문우회(文友會)에 참여했다. 1926년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으로서 그해 10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東滿區域局) 건립에 참여하고 위원이 되었으며, 1927년 5월 동만구역국 임시책임비서를 지냈고 10월 선전부장 대리로 내정되었다. 1928년 3월 조공 만주총국 위원 겸 고려공청 책임비서가 되었다. 그 후 모스끄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했고, 김조이(金肺伊)와 결혼했다. "함남공청 사건’으로 검거되어 1934년 12월 함흥지법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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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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