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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 (Althusser, Louis)

알튀세 Althusser, Louis

1918년 10월 16일 알제리의 바르만드리스에서 출생하였다. 프랑스의 공산주의자이며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는, 1960년대 초에 폭넓은 영향을 끼친, 마르스의 업적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였다.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론 독해》로 그의 견해는 여러 나라에 독자층을 확보하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인간주의적인 그리고 헤겔적인 문제에 대한 도전으로, 다음에는 마르크스에 대한, 그리고 그의 초기 저작에 의해 여기된 논의의 추세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으며, 다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새로운 개념을 제공하였다.
알튀세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들과 성숙된 후기 저작 사이에 어떠한 피상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하더라고 여기에는 근본적인 구별되는 두 가지 사유 양식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초기의 많은 저작들에 의해 수립된 그 탁월한 위치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그는 개개의-즉 개별적인 개념의 의미를 결정하는 체계 혹은 이론적 준거틀, 제기된 질문들, 핵심적인 명제와 생략-문제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였다. 즉 청년 마르크스에 있어 그것은 헤겔에 따른 세계정신의 방식으로 전개되는 운명의 장본인인 인간성과 일치된 인간 소외와 자시 실현의 이데올로기적 드라마였으나, 그 후에는 과학, 사적 유물론, 사회구성과 그 역사의 이론과 다시 구조적 설명을 위한 개념들-생산력과 생산관계, 경제?상부구조?국가?이데올로기에 의한 결정-이 중심을 이룬다. 사유의 두 체계는 인식론적 단절(epistemological break)(이것 안에서 새로운 과학이 이것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전사(pre-history)로부터 출현하는)에 의해 분리되었으며, 알튀세에 의하면 이 단절은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비판적 독해-그의 문제에 숨어 있는 문제성의 징후를 판별할 수 있는-에 의해 노출되었다.
마르크스 사상의 이러한 단계화에서 전개된 개념들-문제성과 인식론적 단절, 이른바 징후에 의한 독해(symptomatic reading)에 의한 관념-은 마르크스에 의해 시작된 혁명적인 새로운 과학 그 자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알튀세에 의해 제안되었다. 이 철학으로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과학, 즉 사적 유물론의 기초 안에 내재하였으며-비록, 내재할 뿐이므로 통합과 발전을 필요로 하지만-우선 첫째로 그것은 인식론, 곧 지식 혹은 과학의 이론이었다. 이 철학의 주된 표적은 인식 주체가 실제 대상을 마주하며 추상 작용을 통하여 그 대상의 본질을 노출시킨다는 인식론, 그리고 사유와 실재의 직접적인 만남, 즉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의 직접적 통찰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지식의 참에 대한 외부의 보증을 요구하는 인식론적 경험주의이다. 통찰로서의 지식 개념에 대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은 산물, 결과 내지는 이론적 실천으로서의 지식 개념에 반대하였다. 그것은 그 자체였으며, 따라서 이론적 실천의 이론(theory of theoretical practice)으로 일컬어졌다(→인식론)
알튀세는 이러한 실천은 전적으로 사유 안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러한 실천은 이론적 대상에 작용하는바, 실제적 대상 그 자체가 정면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적으로 알튀세가 일반성(generalities) Ⅰ,Ⅱ 그리고 Ⅲ이라고 칭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 일반성이란 관념과 추상의 이론적인 생생한 재료, 관념과 추상에 영향을 끼친 산물의 개념적 수단(앞서 말한 문제성), 그리고 이러한 과정의 산물, 즉 변형된 이론적 실재 및 지식의 세 가지이다. 모든 과학은 자신의 성과를 유효하게 하는 내부적인 증명의 양식을 소유하는 까닭에, 이론적 실천은 그 후에 타당성이라는 외부적인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회나 계급 사이의 이해관계는 이론 외적인 절박한 상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식의 내적인 조건들에 의해서 지배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상부구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회사의 흥망성쇠를 벗어나서 어떻게든 자신의 진화 과정을 따르는 자율적인 것이다. 이론적적 내지 과학적인 실천은 이데올로기적 실천과는 구별되고, 또한 정치적 실천이나 경제적 실천과도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실천, 즉 생산의 유형들이다. 이들은 공통의 형식적 구조를 공유하는데 그것은 그 자신의 생생한 재료, 생산의 수단, 생산과정 그리고 산물을 뜻한다. 이것이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우선 인식론을 포함하며 동시에 존재론, 즉 존재의 구성 요소와 궁극적 본질의 이론을 담고 있다.
실재는 환원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고 다양하며, 여러 원인에 종속되는, 한마디로 간추려 말하면 중층적 결정성(overdetermination)을 지닌 과학적인 것이라고 알튀세는 주장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총체성 개념은 그 복합성이 외관상에 불과할 뿐인 헤겔적인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역사상 각 시대의 상이한 모습은 오직 세계정신의 발전 단계를 나타내는 것, 즉 단 하나의 본질을 위한 모든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적인 것으로 간주된 각이한 계기적 총체성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설명은 유일한 중심적 기원으로 단순화하는 환원주의적인 것이 된다. 그리므로 심지어 마르크스주의까지도 경제주의와 역사주의 같은 비정상적인 형식들로 오염되었다. 경제주의는 상부구조의 요소들을 단지 경제적 토대에 의한 침투적인 결정론의 수동적인 결과들이라고 이해한다. 또한 역사주의가 범한 두드러진 오류는 모든 실천을 공동의 역사적 현재 안에서 동일화함으로써 지식을 상대화하고, 과학에서 그 자율성을 빼앗으며 또한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객관적 과학으로서가 아니라 당대의 세계, 계급의식 혹은 프롤레타리아적 관점의 자기표현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해된 사회구성체는 본질이나 중심을 갖지 않는 까닭에 결국 이것을 탈중심이라고 부른다. 사회구성체는 실천이나 혹은 여러 구조 사이의 위계(位階)를 뜻하는바, 실제로 이것은 서로가 구분되며, 이들 중에서 우선적인 원인은 경제적 실천으로 이해되지만 그러나 그 밖의 다른 것들도 어느 정도 자신의 특유한 유효성과 자신의 독립적인 역사를 소유하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것이다. 일정한 환경 안에서는 이들이 지배적인 역할까지도 수행한다. 경제적 수준은 오직 종국적 실천을 통해서 결정될 뿐이다.
이상 모든 것, 즉 그 완전한 복합성에서 사회가 파악되고 역사는 분석된다고 하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 불가결한 것을 알튀세는 사회구성체를 의미하는 지배적인 구조로 칭하면서 집약시켰다. 알튀세가 구조적(structural)이라고 한 그 인과관계는 역사 발전을 지배한다(→구조주의). 인간은 단지 계기적 객체여서 주인(主人)이 없는, 탈중심된 역사 발전 과정의 주체 혹은 장본인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구성체의 구조와 관계의 지주(支柱)이며, 결과이다. 알튀세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보편적 인간 본질 혹은 본성을 거부하였는바, 이와 관련하여 알튀세는 이론적 반(反)휴머니즘을 신봉하였다.
알튀세의 연구는 각이한 당파에 속하는 반대자 모두에게서 강력한 반발을 유발하였다. 그가 좀 더 냉정한 판단태도를 취했다면 그의 이론은 더욱 균형잡힌 것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때로는 지나치게 과장된 수사학으로 쓰여졌지만, 그가 말한 어떤 대목의 경우는 특히 그것이 언급됨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845년부터 마르크스의 저작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났는데, 여기서 특히 역사의 유물론적 개념은 그의 초기 저작보다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월하다. 이 개념에 대한 강조와 반환 원론적 형식의 강조, 과학의 상대적 자율성에 대한 주장, 마르크스에 의한 객관적인 과학적 지식의 가능성-즉 그가 그 가능성의 절정을 겨냥하여 열망하고 의심치 않고 행했던-을 믿었다는 사실 등이 그의 공헌이었다. 그러나 문제성 및 이와 관련된 개념들은 그다지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 이론적 불합리성과는 별도로, 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인간 본성의 모든 개념을 거부했던 것과 같은 주장은 문헌상 뒷받침될 수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도 그 이데올로기, 즉 현실에 대한 가상적 표상을 갖게 되리라는 알튀세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옳든 그르든, 마르크스는 그의 초기에서와 같이 후기에 와서도 그 구성원들에게 공명한 사회를 기대하였다(→물신숭배). 물론 알튀세는 이 문제에 대해서나 다른 점에 있어서도 그에게 동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그 속에 담겨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판독하듯이 보이도록 한다는 것을 반계몽주의적 작태이다.
더욱이 유물론적 과학의 강조를 위해 알튀세의 체계는 관념론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나열하였다. 그것은 발전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발생한 현대사에 대한 계급투쟁의 관계를 희석화시켰다. 또한 그는 경험주의를 거부한다는 명목으로 이러한 지식을 완전히 순환적인, 즉 자기확증하는 개념적 영역 안에 가두어 놓았다. 현실 속에 주어진 것을 위한 직접적 통로로부터 차단된 이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에 대한-이것의 비밀이 최소한 사회적 실재라고 간주된 이론과 궁극적으로 생산양식으로서의 다른 사회적 실천이 함께 공유하는 특유한 공통 본질(unique common essence)이지만-더욱 불가사의한 대응이 인정되었다. 물질적인 생산과의 유사함은 알튀세가 이론적 지식의 조건에 관하여 중요한 지적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회적 현실에서의 실천이 본래적으로 그렇게 구성된다고 하면서 이를 법률로 제정하는 것은 모호한 가치의 형이상학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정치의 영역에서 그것은 필적할 만한 노작이나 통찰력을 산출하지 못하는 단순한 주장에 그치고 말았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몇 가지 취약점을 교정하기 위하여 알튀세는 철학의 새로운 정의를 내렸으나, 여기서도 별로 개선된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하여간에 이러한 결점이 어떠한 것이든, 그가 내린 본래의 정의는 실질적 내용과 명료함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 이상의 더 새로운 정의는 공허한 것이었다. 본래 이론적 실천의 이론, 즉 철학은 더 이상 아무런 대상도 갖지 않는다고 얘기되어 왔었다. 결국 철학은 전혀 이론이 아닌 것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거 정치영역에서 이것은 이론을 설명하고 이론적 중재를 한다. 다른 말로 표한하면, 철학은 그 자신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거니와 또한 이런 점에서 철학은 실제적으로 모든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결국 알튀세가 복잡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의 토대로서 제안한 관념들은 그 역할에 있어 그 자신의 역할 범위 내에서는 극히 무익했다고 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다루었던 문제들 중의 핵심을 이루는 스탈린주의에 대해서 그 어떤 적당한 표현이라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스탈린주의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논의되지 않은 은밀한 것, 즉 변명이나 회피의 낌새가 보이는 선언들이라고 평가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주의와 또한 그 위에 휴머니즘이라는 용어로서 놀랍게도 왜소화하는 설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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