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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렐 조르쥬] (Sorel, Georges)

쏘렐 조르쥬 Sorel, Georges

1843년 11월 2일 체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22년 8월 28일에 사망하였다. 쏘렐은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가장 논의의 여지가 많은 사람 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의 역설적인 면은 모든 마르크스주의자 중 가장 전형적 인물의 하나로 묘사되는 반면, 또한 좌익보다는 우익의 사상가였던 것으로 논평되기도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보인할 수 없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가 다양하게 표출했던 문제를 해석함에 있어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일련의 단계를 거쳤다는 점이다.
쏘렐은 파리에 있는 파리 이공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55세까지 정부기사로 고용되었다. 그의 첫 번째 저서는 1996년에 출간되었으나, 1893(그가 은퇴한 후)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마르크스주의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초기에 쏘렐은 마르크스주의를 하나의 과학으로 보았고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ꡐ예정된ꡑ 발전 법칙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관점에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어려움을 깨달은 선각자 중의 하나였으며, 더 나아가서 그는 1896년부터는 그 자신의 매우 창조적이고 색다른 재해석을 발전시켰는데,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는 우선적으로 윤리학적인 이론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있다. 따라서 쏘렐은 예정된 자본주의의 경제적인 붕괴 대신에 부르주아 사회가 직면한 도덕적인 파국의 이론을 제안했다.
우선 첫째로 쏘렐의 마르크스주의의 재조직화는 도덕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은 노동계급, 노조와 협동조합을 지지하기 위해, 특히 노동계급의 도덕성을 교육시키려는 시도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베른슈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책의 추천과 정치적 개혁주의 및 민주주의와도 관련된다. 개혁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은 신속하고도 극적으로 드레퓌스(Drefyus)사건의 종말을 고하게 했고, 1902년 이후에 쏘렐은 생디칼리즘의 주요한 이론상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의 생디칼리스트적인 저서 중에서 논리적 결론에 도달한, 결정론적인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초기의 비판으로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폭력론》(1906)이다. 계급투쟁을 사회주의의 ꡐ알파요 오메가ꡑ로 받아들인 쏘렐은 마르크스주의의 중심적인 교의는 노동계급을 행동하도록 고무시킬 수 있는 상념으로서의 ꡐ신화ꡑ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쏘렐에 따르면 이 ꡐ신화ꡑ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자 교의의 모든 중요한 특징에 명확한 방법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믿는 총파업(→파업)의 신화이다. 그리고 행동, 특히 폭력의 행동을 통해 노동계급은 숭고하고 웅대한 윤리를 발전시키고 이보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또한 사회주의의 도덕적이고 경제적인 기초를 세우려고 했다. 서구의 문명화 과정에서의 필연적인 몰락으로부터 구제되어야 했다. 당연히 생디칼리스트의 운동은 쏘렐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고 1909년에 그것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였다. 의회 밖의 권리로 짧은 불장난이 따랐으나 쏘렐의 열성은 ꡐ행동하는 인간ꡑ인 레닌에 의해 그가 죽기 전에 잠깐 다시 점화되었다. 그는 무솔리니[Mussolini]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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