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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독재 ] (dictationship of the proletariat)

이는 마르크스 정치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이고 레닌주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1852년 3월 5월)에서 마르크스는 계급 또는 계급투쟁을 밝혀냈다는 것을 부정하고 '내가 새롭게 하였던 것은 (1)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발전에 있어 특정한 단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되게 된다. (3) 이 독재 자체는 오직 모든 계급의 폐지와 무계급 사회로의 이행을 수행해 간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어느 곳에서도 그 개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않았다. 그는 《계급투쟁》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영구혁명의 선언, 계급차별의 완전한 철폐를 향한 도상에 있어 필요한 중간 지점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3장)를 의미하는 것으로 말하였고, 또 《고타 강령 비판》에서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의 사이에서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에 놓여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이행에 상응하는 기간이 있고 이 기간에 있는 국가는 오로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만을 취할 수 있다.'(4절)고 말하였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이러한 것들 외에 다른 내용은 더 이상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 개념에 의해 그가 의도하였던 것을 정립시키려 한 중요한 저서, 즉 1871년의 파리코뮨에 대하여 쓴 소책자인 《프랑스 내전》이 있다. 마르크스는 후에 코뮨은 '단지 예외적인 조건에서의 도시봉기'이고, '코뮨의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다.'(1881년 2월 22일, 도멜라 뉴벤휘스에게 보낸 편지)고 하였다. 1891년 《프랑스 내전》의 독일어판 서문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와는 반대로 '파리 코뮨을 살펴보라.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관저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정당한 주장이다.'라고 말하였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파리 코뮨('마침내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성취한 가운데 발견된 정치형태', 《프랑스 내전》3장)의 의의는 이전의 모든 혁명들과는 달리 국가 기구를 분쇄하는 것에 착수하여 권력을 인민에게 부여하였으며,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행사되었던 '모든 발의권은 코뮨의 수중'에 놓여지게 되었으며, 코뮨의 평의회는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그들 대부분은 '물론 노동자이거나 노동계급의 승인된 대표자들이었다.'는 데 있다. '코뮨은 의회 집단이 아니고 노동집단이며 동시에 전문적인 입법부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을 제거하고 저항하는 군대를 진압하며 무장한 인민들로 대체하였다.' 그 외에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행정장관이나 재판관도 선출되어 책임을 지고 소환될 수 있었으며,' 모든 공공사업은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시행되었다. 또한 마르크스는 코뮨의 헌법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기식하면서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한, 국가가 흡수한 모든 지배력을 사회 조직체에 복귀시켰다.(프랑스 내전》3장)고 말했다. 결국 마르크스는 코뮨을, 노동계급에 권력을 부여하고 가능한 한 직접 민주주의에 접근시키기 위한 정권을 만들어 내려는 하나의 시도로 보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에 있어서 이 점은 지금까지 부르조아지에 의해 행사되었던 종류의 헤게모니를 프롤레타리아트가 행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놓여져 있는 통치의 현실적 과제를 짊어진 정권의 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이 실제로 통치하고,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수행되어 왔던 많은 과제를 완수하는 정부의 한 형태라고 그가 의미했던 바를 말뜻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
정권의 한 형태임과 동시에 정부의 한 형태라는 두 가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이 견해는, 파리 코뮨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석에 면밀히 근거하여 1917년 10월 혁명 직전에 쓰여진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그 뛰어난 표현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저작은 개념, 즉 당의 역할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한편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다른 한편에서 '당의 지도 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명백히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론과 실제 모두에서 널리 보급된 정식은 후자의 것이다.
똑같은 문제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에 중요한 부가적인 의미가 있다. 이것은 혁명의 과정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 기간에 적들에 의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철저한 진압이라고 이해된다.(→사회주의로의 이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조아지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에 의해 유지된 권력이며 어떠한 법률에 의해서도 제한될 수 없는 권력'이라고 1918년 말에 레닌이 썼다.(《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이것은 자유로운 합법적 조항 아래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명목 하에 국가와 그것에 강요받는 기관들에 의해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비판가들에 의해 강조되는 경향은 그 억압적인 측면에 있는데,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포함하여 전체 사회에 걸쳐 당과 국가의 독재에 매우 관계 깊은 것으로서, 이러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의 지도자들을 난처하게 한다. 그러한 여러 당들은 현재 그들의 당 강령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공식적으로 삭제하였다.

마르크스 : 혁명에 뒤이은 여하한 과도적인 국가상태도 항상 독재를, 정력적인 독재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캄프하우젠 (Ludolf Comphausen, 1803~90) 을 비난한 것은 그가 독재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낡은 모든 잔존물을 곧 분쇄하거나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캄프하우젠씨가 입헌에 관한 꿈을 꾸고 있는 사이에 패배한 당은 관료와 군대 안에서 그의 기반을 강화한 반동으로부터 이곳저곳에서 감히 공공연한 도전까지 받게된 것이다.(위기와 반혁명, 1848, M•E선집 제3권, P. 265).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점 더 혁명적인 사회주의의 주위에 집결하고 있다. 즉, 부르주아 자신이 이에 대하여 블랑키라는 명칭을 붙인 공산주의단체 주위에 뭉치고 있다. 이 혁명적인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혁명의 영속선언이요, 혁명의 계급적 독재이, . 계급적 차별의 일반적인 폐지, 계급차별의 기초로 되어 있는 현재의 모든 생산관계 폐지, 이들 생산관계에 대응하는 현재의 전사회관계 폐지 및 그런 사회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관념의 변혁을 위해 필연적인 과도기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독재이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1850, M•E선집 제5권 상, p.117).
이번에는 나 자신에 관하여 말 한다면, 근대 사회에서 제계급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나, 이들 계급 상호간의 투쟁을 발견한 것도 나 자신의 공로가 아니다. 시민적인 역사가들은 나보다도 훨씬 이전에 이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그리고 시민적인 경제학자는 여러 계급의 경제상의 해부에 대해 이미 기술하고 있다. 내가 새로 발전시킨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의 것을 증명한 일이다. (1)제계급의 존재는 오로지 생산이 특정적인 역사적 발전단계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 (2)계급 투쟁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초래한다는 것, (3)이 독재 자체는 모든 계급의 지양과 무계급사회에 이르는 과도적 형태를 이루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들이다. (르크스로부터 바이데마이어에게, 185・2, M•E선집 제5권, p.488).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후자에 대한 전자의 혁명적 전화시기가 가로 놓인다. 그에 응하는 것은 또한 정치상의 과도기로서 그 국가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일 것이다. (독일노동자당〔1875년의 고타강령〕평주, 1875, M•E선집 제12권, p.254).

마르크스・엥겔스 : 노동자혁명의 제1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으로 격상시키는 것,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일체의 자본을 빼앗고 일체의 생산도구를 국가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수중에 집중시켜, 생산력의 양을 가급적 급속히 증대시키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처음에는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에 대한 전체적인 참해로써,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불충분하고 영속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여러 방책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 방책은 운동이 진전됨에 따라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으로써 모든 생산수단을 변혁시키는 수단으로 불가피한 것이다. (공산당선언 1848, M•E선집 제2권, pp.51〜515).

엥겔스 : 사회민주당의 속물들이 최근에 ‘프롤레타리아 독재’ 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소갈머리 없는 공포에 빠져 있다. 좋다, 여러분은 이 독재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가? 파리코뮨을 잘 보라, 그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프랑스의 내란 제3판에 대한 서문, 1891, M•E선집 제11권 하, P. 387).

레닌 : 독재란 사회의 일부분이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것이요, 더우기 직접 폭력에 의거하여 지배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혁명적이며 유일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그들의 반혁명적인 기도를 격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므로 독재를 부정하든가, 또는 말로서만 그것을 승인하는 사람은 사회민주당원일 수 없다. 그러나 개별적인 경우에, 예외로서 예컨대 이미 사회혁명을 수행한 대국(大國) 옆에 있는 소국(小國)에서 그의 부르주아지가 반항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무익함을 확신하고 목이 달려있는 쪽을 택하여 권력을 평온리에 양도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이보다 훨씬 앞서 예상해야 할 것은 소국에서도 내란 없이는 사회주의가 실현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상으로서는 비록 인간에 대한 폭력이 허용되지 않는다곤 하지만, 내란을 용인하는 것은 국제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유일한 강령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희화(戱畵)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에 대하여 1916, 레닌전집 제23권, pp. 70〜71).
우리들에게는 혁명적인 권력이 필요하며, (일정한 과도기적 기간에는)국가가 필요하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다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와의 차이는 전자가 집중된, 대규모로의 공산주의적 생산을 찬성하는데 대해 후자는 세분된 소규모 생산에 찬성한다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름아닌 힘의 문제, 국가 문제에서의 차이는 우리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투쟁을 위해 국가의 혁명적 제형태를 혁명적으로 이용할 것에 찬성하지만, 무정부주의자는 이에 반대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에게는 국가가 필요하나, 그것이 부르주아지가 필요로 하고 있는 국가, 즉 경찰•군대•관료제도(관리제도)와 같은, 인민으로부터 분리되고, 인민에 대립하는 권력기관을 가진 그런 국가가 아니다. 일체의 부르주아 혁명은 모두가 이런 국가기구를 한층 완전하게 했을 뿐이고, 그것을 어떤 당의 지배로부터 다른 당의 지배에로 옮겼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만일 그들이 현재의 혁명전취물을 끝까지 수호하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평화와 빵과 자유를 쟁취코자 희망한다면, 그것을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이 ‘기성(旣成)’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경찰이나 군대 및 관료제도 따위를 무장한 전인민과 융합시킴으로써 이것을 새로운 국가기구로 대치시켜야 한다 ( 먼곳으로부터의 편지, 1917, 레닌전집 제23권, pp 357〜359).
계급투쟁을 승인하는데 지나지 않는 자는 아직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부르주아적 사상과 부르주아 정치의 테두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계급투쟁에 관한 학설에 한정시키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축소시키고 왜곡하여 그것을 부르주아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격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계급투쟁의 승인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승인으로 확대시키는 사람만이 마르크스주의자다. 바로 이점에 마르크스주의자와 진부한 소부르주아(및 대부르주아)와의 가장 심각한 차이가 있다. 이런 시금석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정말 이해하고 또 승인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기회주의자는 계급투쟁의 승인을 먼저 가장 중요한 시점까지, 즉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그들을 완전히 절열시키는 기로까지는 확대시키지 않는다. 현실 적으로 이 시기는 불가피적으로 미증유의 격렬한 투쟁시기이며, 미증유의 첨화된 형태를 취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국가 역시 불가피적으로 새로운 타입의 민주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와 무산자 일반에게는), 또 새로운 타입의 독재적인 (부르주아지에 대해서는) 국가여야만 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국가학설의 본질은 한 계급의 독재가 모든 계급사회 일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타도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본주의와 ‘무계급사회’, 공산주의와를 사이에 두는 역사적 시기 전체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터득되었다. 부르주아적 국가형태는 다종다양하지만 그의 본질은 하나이다. 이들 국가는 모두 형태야 어떻든 간에 결국은 반드시 부르주아지 독재인 것이다.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물론 매우 많은 다종다양한 정치형태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이때 이의 본질은 불가피적으로 단 한가지 프롤레타리아 독재일 것이다. (국가와 혁명, 1917, 레닌전집 제25권, PP. 444〜445).
우리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 이행하려면 국가가, 즉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승인해야 한다. 강제의 형식은 그 혁명적 계급의 발전정도에 의하여, 그리고 예컨대 장기간에 걸친 반동적인 전쟁의 유산과 같은 특수사정에 의하여, 그리고 또 부르주아지나 소부르주아지의 반항형태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소비에트(즉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개개인이 독재자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원칙적인 모순도 절대로 없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부르주아 독재와 다른 점은, 전자가 다수의 피착취자를 위해, 소수의 착취자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이고, 또 프롤레타리아・‧독재를——개인을 통해서도一실현시키는 것은 단지 근로피착취자 대중만이 아니라 이런 대중을 역사적 창조활동에로 지향케하며, 그를 위해 궐기 시키도록 만들어진 조직(소비에트 조직은 이런 조직에 둔다) 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소비에트권력의 당면한 임무, 1918, 레닌전집 제27권, p.271).
독재는 직접 폭력에 입각하고 어떠한 법률에도 구속되지 않는 권력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으로 쟁취되고 유지되는 권력이며 어떠한 법률에도 구속되지 않는 권력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교자 카우츠키, 1918, 레닌전집 제28권, P.249).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투쟁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서의 계속이다. 프롤레타타리아 독재는, 승리를 거두고 그의 수중에 정치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가, 타도되기는 했지만 아직 절멸되지 않았고 또 소멸되지도 않고 그의 반항을 그만두지 않은 부르주아지, 그의 반항을 강화한 부르주아지에 대하여 행하는 계급투쟁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즉 근로자의 전위와 근로자의 수많은 비프롤레타리아층(소부르주아지・소경영자・농민・인텔리겐챠 등) 또는 근로자의 대다수와의 계급적 동맹, 자본가를 완전히 타도하고 부르주아지의 반항과 그들의 부활기도를 완전히 압살하기 위한 동맹의 특수형태이다. 이것은 특수정세 하에서, 즉 격렬한 내란이라는 정세 하에 성립되는 특수형태의 동맹이며, 사회주의의 확고한 아방측(我方側)과 사회주의의 동요하는 동맹자와의, 때로는 ‘중립적인’동맹자와의 동맹(그렇게 되면 동맹은 투쟁협정에서 중립협정으로 된다)이며, 경제적 • 정치적 • 사회적 • 정신으로 각기 다른 제계급의 동맹이다(연설, 자유와 평등의 슬로우건에 의한 인민의 기만에 대하여를 출판할 때의 서문, 1919, 레닌전집 제29권, P. 382).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간의 계급투쟁의 단호한 혁명적인 형태이다. 이와 같은 투쟁은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혁명적인 전위가 프롤레타리아의 압도적 다수를 이끌고 전진할 때에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준비하려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제가 유지되는 한, 모든 개량주의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모든 논의는 부르주아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폭로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노동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지를 옹호함을 의미하는 이와 같은 경향의 표출을 폭로할 필요가 있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 모든 종류의 프롤레타리아 조직, 즉 정치조직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계몽조직 등등을 포함하는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낡은 지도자를 공산주의자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 나라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지배가 장기간에 걸치며 완전하고 견고하면 할수록 그만큼 부르주아지는 부르주아지에 의하여 교육되고 부르주아지의 견해와 편견에 가득 찬, 흔히 부르주아지에게 직접 간접으로 매수된 활동가를 그런 조직의 지도자의 지위에 앉힐 수 있다. 이제야말로, 지금까지 100배나 대담하게 노동귀족, 즉 부르주아화한 노동자의 이와 같은 분자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든 지위에서 추방할 것, 피착취대중과 연결을 가지며, 착취자와의 투쟁에서 대중의 신뢰를 얻고 있는 사람이라면 설사 그가 매우 미경험적인 노동자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으로 경질할 필요가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경험이 부족한 그런 노동자를 국가의 가장 책임있는 부서에 임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정부의 권력은 무력해질 것이며, 이런 정부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자본주의 역사전체에 의하여 이와 같은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갖춘 오직 하나의 계급이 자본가계급에게 억압되고, 학대받고, 압살되고, 위협당하며, 분산되고, 기만당한 모든 근로피착취자에 대한 지도를 가장 완전하게 실현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준비를 도처에서 이제 곧, 특히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즉, 예외 없이 모든 조직・결사・단체, 무엇보다 첫째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다음에는 비프롤레타리아적인 근로피착취 대중의 조직•결사•단체 (정치적・노동조합적・군사적・협동조합적・교육적・스포츠적인 기타)내부에 공산주의자 그룹이나 세포를 조직 하여야 한다. 이것은 주로 공개적인 것이지만, 또한 비밀히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은 부르주아지를 위한 그룹이나 세포가 금지되거나 그의 조직원이 체포・추방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반드시 비밀히 조직 및 유지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 세포는 세포 상호간에도, 또 당중앙부하고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각자의 경험을 교환하며 선전선동 및 조직활동을 전개하고 사회생활 모든 분야에서, 그리고 근로대중의 모든 역종과 아종에 적응하여 이와 같은 다방면적인 활동으로써 자기자신, 당, 계급, 대중까지도 계통적으로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2회 세계대회의 기본임무에 관한 테제, 1920, Jane Degras 편저, 코민테른 도큐먼트 I, 1919~1922, 현대사조사, 동경, 1977, PP. 108~109).

트로츠키 :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1891년, 죽기 얼마 전에 엥겔스는 이것을 단호하게 옹호하였는데 ——그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자기들의 지배하에 국가권력을 장악할 유일한 형태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권력의 배타적 행위라는 개념이다.’ 약 10년 전에 카우츠키는 이상과 같이 쓴 바 있다. 그 무렵에 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권력형태로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권력의 배타적 행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생각했을 뿐, 민주적인 의회에서의 사회주의 정당의 다수의석을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제 폐지를 임무로 한다면 그에 이르는 길이 프롤레타리아 수중에의 전체국가권력의 집중, 지배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대단히 오랜 시간을 목표로 계획된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동하는 과도기를 통한 혁명의 필요성에 입각하여 예외적인 제도의 창설 이외 다른 형태가 없다는 것은 전적으로 명백하다. 독재가 불가결하다는 것은 부분적 변화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존재 자체가 문제화되기 때문이다. 힘만이 결정적 요인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단일권력이 특히 소부르주아지와 농민에 대한 부분적 협정 또는 대폭적인 양보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런 협정을 맺는 것은 권력의 물질적 장치를 장악하고, 사회주의라는 목적의 이익에 입각하여 해야할 양보, 또는 거부해야 할 양보를 자유로이 결정할 가능성을 확보했기 때문인 것에 불과하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1920, 트로츠키선집 제12권, pp. 52〜53).
그러나 가장 곤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이다.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의 건설의 발전정도에 따라서 ....... 완화되어 점차 프롤레타리아 민주제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 이 2〜3 행의 글 가운데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원칙상의 오류가 있다. 여기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 민주제와 대립되어 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본질 그 자체로부터 말한다 해도 프롤레타리아 민주제의 최고발현일 수 있고, 또 그러해야만 한다. 웅대한 사회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는 그의 모든 정력, 모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업은 마땅히 적을 타도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레닌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주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국가를 통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독재의 검은 계급의 적에게 향해져 있다. 그리고 독재의 기초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제에 의하여 구축되는 것이다. 지론스키에 의하면 ‘사회주의적 건설의 발전에 따라서’ 독재에 대체하여 프롤레타리아 민주제가 나타난다.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관점이다. 부르주아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로 변화해 감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민주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소멸해간다. 왜냐하면 국가 그 자체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제’로 들어 갈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로, 국가폭력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까닭이다.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의 발전은 독재제가 민주제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고 독재제나 민주제나 사회주의 사회의 경제적・문화적 조직 속에 해소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면 안된다 (프랑스는 또다시 어디로 가는가 ?, 1935, 트로츠키선접 제8권,pp. 121〜122).

스탈린 :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이행을 일련의 ‘가장 혁명적인’ 법령이나 포고를 발포하는 순간적인 시기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국내전 쟁과 대외적 충돌, 꾸준한 조직사업과 경제 건설, 진공과 퇴각, 승리와 패배로 가득 찬 한 개의 완전한 역사적 시기로 간주하여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는 경제적 및 문화적 전제를 마련하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게 첫째로는, 나라를 관리할 만한 힘을 가지게끔 자체를 교양하며 단련할 가능성을 주고 둘째로는, 사회주의적 생산조직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부르주아층을 재교양하며 개조할 가능성을 주는 데도 필요하다. … …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제도의 토대 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를 전복한 후, 그 제도를 파괴 하는 과정에서, 기본생산도구와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폭력적 혁명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지 에 대한 폭력에 의거하는 혁명적 정권이다. (레닌주의 기본에 대하여, 1924, 스탈린선집 제1권, 학우서방, 동경, 1966, pp. 297〜300).
어떤 동지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이 폭력의 개념에 국한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폭력만이 아니라 비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근로대중에 대한 영도이기도 하며,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보다 그 유형에 있어서 높고 따라서 노동생산능률도 역시 높은 그런 사회주의 경제의 건설이기도 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은 1)자본가와 지주에 대해서는 법률적 제한을 받지 않는 폭력이며, 2)농민에 대해서는 노동계급의 영도이며, 3)전체 사회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의 건설이다. 독재의 이 세 측면 중 어느 한 측면이라도 제거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은 왜곡 될 수 있다. 이 세 측면을 합쳐 보아야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은 완전무결하게 된다.(질문과 해답, 1925, 동상서, P.541).
여기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세 가지 기본측면이 나온다. (1)착취자들을 진압하 고 나라를 방위하며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과 연계를 강화하고 세계 혁명의 발전과 승리를 위하여 노동계급의 정권을 이용하는 것, (2)부르주아지에게서 근로대중과 피착취대중을 완전히 떼어 내고 이 대중과 노동계급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그들을 사회주의 건설사업에 인입하고 그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국가적 지도를 보장하기 위하여 노동계급의 정권을 이용하는 것. (3)사회주의를 조직 하고 계급을 청산하며 계급없는 사회, 사회주의 사회에로 이행하기 위하여 노동계급의 정권을 이용하는 것.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결합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측면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유일한 특징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이 세 가지 특징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라도 빠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본주의적 포위 하에서 독재로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측면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제거 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을 왜곡할 위험성이 생기게 된다. 오직 이 세 가지 측면을 한데 합쳐 놓아야만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완전하고 완성된 개념을 얻을 수 있다. (레닌주의의 제 문제에 대하여, 1926, 동상서 제2권 pp. 18~19).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시기를 혁명적 전투와 국내전쟁으로 가득찬 어느 정도 장구한 시기로 보았으며, 이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정권을 잡고 낡은 자본주의 사회 대신에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 계급 없는 사회, 국가 없는 사회를 건설함에 필요한 경제적•정치적•문화적 및 조직적 방책을 취한다고 보았다. 레닌은 전적으로 완전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기본 명제들에 입각하고 있었다. (제1차 미국 노동자 대표단과의 담화, 1927, 동상서, p.364).

소련공산당 강령 :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압도적 다수의 소수자에 대한 독재로서, 이것은 착취자를 반대하고 각국 인민, 제민족의 억압에 반대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착취를 근절시키기 위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자 계급 뿐만 아니라 일하는 인민전체의 이익을 표현한다. 그의 주요내용은 폭력적인 지배 구조이며, 모든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며 그 획득물을 사회주의의 적들로부터 수호하는 것이다. (소련공산당 강령, 1961, 프로그레스 출판사, 모스크바, 1967, p.48).

인민일보 :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그 이전의 어떠한 착취계급의 독재와도 아주 성질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피착취계급에 의한 독재요, 다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독재이며, 착취와 빈곤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독재요, 인류사상 가장 진보된, 그리고 또 최후의 독재이다. 이와 같은 독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곤란한 임무를 지니며, 역사상 가장 곡절(曲折)이 많은 투쟁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이 일도 레닌이 말한 것처럼 많은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강대한 적에게 승리하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권력의 고도집중은 요구한다. 이렇게 고도로 집중된 권력을 고도의 민주주의와 결부되어야 한다. 집중제가 일방적으로 강조되면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점도 사람들이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잘못이 있든지 간에 인민대중에게는 뭐니뭐니 해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제도가 착취계급에 의한 모든 제도보다. 부르주아지의 독재제도보다 훨씬 우월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대하여, 중공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1956, 외문줄판사, 북경, p. 6 )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동맹 강령 :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역활이 만인에 의하여 승인되어 있는 정부 또는 정치제도의 사회적 내용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인 에게 승인된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역할이란, 단지 노동자당이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나라에서 노동자계급과 그의 지도적인 사회주의 세력이 근로대중과 동맹하여 노동자계급의 사회경제적 이익에 따라 사회관계를 변경시킬 수 있는 지위에 있고, 또 실제로 변경시키고 있는 그런 제계급 및 정치제세력의 관계를 말한다.……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노동자계급, 즉 사회적 소유에 속한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노동자의 당면한 경제적 이익과 기타 이익, 그리고 그의 장래 이익을 자기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활동 전체의 지도원리로 하고 있는 과도기의 정치 제도를 말한다. 그것은 ‘모든 계급의 폐지와 무계급 사회에 이르는 과도기적 성격을 이루는데 불과하다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 1958, pp. 105~106).
공산당이 정치권력을 절대적으로 독점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 발전의 보편적인 ‘영구적인’원칙인양 선전하는 것도 비판을 감내 하지 못할 교조라고 생각한다. (동 상, P. 150).

김일성 :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노동자, 농민들의 이익을 옹호하며 지주, 자본가들의 이익을 거부합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지주, 자본가들에게는 독재를 실시하며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인민에 대하여서는 민주주의를 실시합니다. 자본주의 제도를 위하여 서는 부르주아 독재가 필요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위하여서는 프롤레타아 독재가 필요합니다. (우리당 사법 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1958, 김일성저작선집 제2권, p.135).
프롤레타리아 독재체계에서 수령, 당, 계급, 대중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전일체를 이루고 있읍니다. 수령이 없는 당은 지휘관이 없는 군대와 같습니다. 현명한 수령이 없는 당은 진정으로 노동계급의 선봉대로서의 역활을 할 수 없으며 또한 당의 옳은 정치적 영도를 떠나서는 노동계급은 인민대중을 자기 주위에 묶어세울 수 없으며 그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로 이끌 수 없읍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당은 반드시 자기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하여야 하며 그에 기초하여 모든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유일적으로 지도하여야 합니다. (정치용어사전, 사회과학출판사, 평양, 1970, P. 631).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사명은 착취 계급을 청산하고 그 반항을 진압하는 한편, 모든 근로자를 교양 개조하여 혁명화•노동계급화하며 온갖 계급적 차이를 점차적으로 없애며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데 있습읍니다. (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자유와 독립의 가치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강력한 무기이다, 1968 김일성 저작선집 제5권, p. 168).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며 노동계급의 역사적 위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무기로서의 자기의 역활을 더욱 강화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 하여 사회주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여 한편으로는 계급투쟁을 계속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힘있게 밀고 나가야 할 것 입니다. (동상서, p.166).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의 혁명에 적대되는 온갖 반혁명적 요소를 철저히 진압 하며 근로인민의 이익과 혁명의 이익을 옹호하는 노동계급의 강력한 무기 입니다. ( 제1차 5개년 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1958년, 김일성 저작선집 제2권, 1968, 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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