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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칸토르] ((Cantor, Georg; 1845-1918))

현대 집합이론을 창시한 독일 철학자이며 무한정하게 크지만 서로 떨어져 있는 변형 수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칸토르는 철학적 본성은 있을 수 없다고 썼지만 수학의 근본적인 탐구에서의 그의 놀랄만한 성취는 20세기의 30년 동안 서구 사상에 심대한 영향력을 끼친 수학의 인식론적 기초에 더 깊은 연구를 자극하였다.

유망하고 교양을 갖춘 덴마크 태생의 부모님에게 칸토르의 수학에 대한 재능은 14세 때 발견되어 18세 때 위대한 수학자인 칼 와이스에어스트라스 Karl Weiserstrass 와 레오폴드 크로넥커 Neopold Kronecker 아래서 공부하였고 1867년에는 가우스 Gauss 의 유명한 미해결 문제 중의 하나에 관해 박사학위논문을 발표하였다. 칸토르는 그 당시 할레(Halle) 대학에 다녔는데 거기에서 그의 여생을 보냈다. 1869년부터 1873에 까지 발표된 일련의 논문에서 칸토르는 삼각급수라는 수 이론을 다루었다. 거기서 그는 실수와 리만 복소수의 개념, 그리고 수렴되는 유리수결과의 관점에서 무리수의 새로운 정의를 확장하였다. 데데킨트 Dedekind 와의 편지교환에 따르면, 그 유명한 집합이론과 초한수의 개념이라는 작업을 그 당시 시작했다.

1873년에 칸토르는 일대일 대응이라는 발상을 사용하여 유리수가(예: 분수)가 무한수이지만 자연(전체) 수와 함께 일대일 대응하여 배열될 수 있기 때문에 계산가능하고 이와 반대로 실수 집합은(예: 무한히 많은 소수를 포함한 것) 계산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보다 더 역설적으로, 그는 모든 대수 집합이(2의 제곱근 등등) 자연수만큼 많지만 실수의 부분집합인 초월수는(π와 같은 것) 계산불가능하며 그러므로 초월수는 자연수 보다 더 많다. 결과는 너무 놀라워서 크로네커 Kronecker는 처음에 발표하기를 거부하였다. 칸토르 이론은 즉시 논쟁이 되었고 이전에 했던 1보다 더 큰 “초한수(transfinite numbers)” 전체 결과에 대한 연구를 방향 지웠다. 칸토르는 이러한 초한수가 실제 존재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는데 어린 시절 종교적 체험을 묘사하면서 이 주장을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크로넥커는 널리 알려졌듯이 단지 정수만이 ‘존재’하며-“신은 정수를 만들었고 그 나머지는 인간의 작품이다.”-라며 언급하면서 베를린 대학 교수 임용을 막았다.

칸토르는 정신 병의 발작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업을 하였다. 부분적으로 크로넥커와의 경험 때문에 그는 종종 수학자를 열망하는 젊은이들을 지원하였다. 세기의 전환기에 그의 작업은 분석과 토톨로지인 함수 이론 발전에 있어 근본적으로 철저히 재인식되었고 더우기 그의 작업은 수학의 논리적 기초의 사상학파인 직관주의자들(브라우어)과 형식주의자들(힐베르트) 양자의 발전을 자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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