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사전프로젝트 - 맑스주의사상사전,인물대사전, 정치경제학사전
처음으로 > 정치 > 혁명가 평전 ( 75 권)
 


* 목차보기
* 이 책에 대한 의견
* 의견쓰기
* 이분류의 목록으로

* 이 책의 PDF 정보

이 도서는 PDF 파일이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김알렉산드라 평전
정철훈 지음
출판사 - 필담
초판일 - 1996-01-30
ISBN - 9788981433017
조회수 : 985

● 목 차

서언 : 한인들의 극동 러시아 진출 = 19

제1장 김알렉산드라의 생애와 활동

이주 시기 - 시대 상황 = 55
출생 시기 - 가족들 = 66
성장 시기 - 동청철도 건설현장 = 75
의화단 운동 = 89
러시아 민주화 운동 참여(1905년) = 109
우랄산맥에서 - 1917년 2월혁명 시기 = 123
혁명 속에서 - 10월혁명 시기 = 150

제2장 한인 사회주의자 그룹의 등장

한인 망명가들의 사회주의 동화 과정 = 169
민족 및 공산주의 계열의 연합 시도 = 181
한인사회주의자동맹의 창립 = 198
시베리아 내전과 볼셰비끼의 저항 = 217
김알렉산드라의 죽음 = 241
한인사회주의자동맹 제2차 당대회 = 255

맺음말 = 269

사료

사료1 : 러시아 내 김알렉산드라 연구자들의 서신 = 277
사료2 : 리인섭의 「망명가의 수기」전문
사료3 : 재소 작가 김준의 추모시「땅의 향기」

참고문헌 = 338

맨위로맨위로

책 소개

김알렉산드라는 민족문제의 피해자인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평전을 쓰면서 되새기곤 했던 것은 김알렉산드라가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못지않은 좌파 운동의 이데올로그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자의식이었다. '아리랑'의 작가 님 웨일즈가 주인공 김산에게 품었던 애착과 일관성을 본받으려고 노력했으나 내 스스로 웨일즈의 혜안에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를 절감하곤 했다. 웨일즈와 김산이 공유했듯이 나는 김알렉산드라가 살았던 시공에 닿으려 2년 여 동안 러시아 극동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한인들의 발자취를 찾았지만 무지와 시간의 벽앞에서 수없이 절망했다. 김알렉산드라를 포함한 많은 한인사회주의자들의 고난에 찬 삶은 우리 역사의 큰 탐구방향을 '사회주의와 민족문제'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저자 서문 중에서

김알렉산드라 뻬뜨로브나 (1885~1918) (여성):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당원) 러시아 연해주 니꼴리스끄, 우수리스끄에 인접한 조선인 농촌 시넬리니꼬보 마을[秋風, 永安坪 또는 大甸子]에서, 함북 경흥 사람으로 1869년에 러시아로 이주한 김두서(金斗瑞)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으며, 1895년 중동선(中東線) 철도건설공사장의 통역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갔다가 그곳에서 아버지와 사별했다. 그후 아버지의 폴란드인 친구인 스딴께비치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뒤 블라지보스또끄의 한 여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니꼴리스끄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재학중 짜르 전제에 반대하는 러시아 혁명가들의 저작을 탐독했으며, 러시아 청년혁명가들과 교유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시넬리니꼬보 마을의 한 소학교 교원이 되었으며, 이즈음 후견인인 스딴께비치의 아들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에도 러시아 짜르정권에 반대하는 지하혁명활동에 종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말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러시아 관영공장들의 소재지 우랄지방으로 이주했다. 빼름스끄 대공장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진력했다. 이 무렵 러시아사회민주당 예까쩨린부르끄위원회에 가입했다. 1917년 초 러시아사회민주당(볼셰비끼)에 가담했다. 그해 러시아 2월혁명이 일어난 직후 빼름스끄 대공장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이 되어 공장책임자의 불법을 성토하는 등의 활동으로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은 물론 수만원의 손해배상까지 받아냈다. 이 사건으로 조선인 ․ 중국인 ․ 러시아인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7월 러시아 극동지방의 볼셰비끼 당사업에 관한 책임을 부여받고 블라지보스또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조직 및 선전 활동에 종사했다. 10월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열린 제2차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끼) 극동지방 대표자회의에 무라비요프 ․ 아무르스끼 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극동인민위 외교인민위원, 한인사회당 간부) 1918년 1월 하바로프스끄에서 볼셰비끼당 간부로 선임되었다. 같은 시기 제3차 극동쏘비에뜨대회에서 결성된 극동인민위원회 정권의 외교인민위원이 되었다. 4월 하바로프스끄에서 이동휘(李東輝) 등과 함께 최초의 조선인 공산주의단체인 한인사회당을 창립하여 간부로 취임했다. 9월 하바로프스끄가 일본군과 백위군(白衛軍)에게 함락되자, 볼셰비끼당 및 한인사회당의 간부들과 함께 바론 꼬르프호를 타고 아무르강을 거슬러 무르주로 퇴각하다가 백위군에 체포되었다. 백위군의 즉결재판에서 볼셰비끼 핵심인물 17명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달 16일 새벽 4시 우수리 강변의 ‘죽음의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1967년 11월 하바로프스끄에 그녀의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처형장에는 추모탑이 건립되었다.

맨위로맨위로


● PDF 원문 파일 정보

PDF문서를 보기 위해서는 개발사인 Adobe사에서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인 Adobe Reader(한글판)를 다운받아 설치하셔야 합니다.

이 도서는 PDF 파일이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 이 도서에 대한 의견들 맨위로맨위로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

뒤로 | 목차보기 | 이분류의 목록으로

맨위로맨위로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