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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08 00:36
동맹에 보내는 중앙 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_맑스, 엥엘스
 글쓴이 : webmaster
조회 : 1,137  
동맹에 보내는 중앙 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58]

 중앙 위원회가 동맹에

 형제들!
 1848/49년의 2년에 걸친 혁명적 해들에 동맹[59]은 두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입증하였다 ; 첫째, 동맹의 회원들이 모든 곳에서 정력적으로 운동에 개입함으로써, 요컨대 언론에서, 바리케이트 위에서, 전장에서 유일하게 혁명적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루는 대열의 선두에 섬으로써 동맹은 자신을 입증하였다. 둘째, 1847년에 열린 여러 차례의 대회 및 중앙 위원회에 돌려진 회람장과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피력되었던 운동에 대한 동맹의 견해가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었음이 증명됨으로써, 또 그 문서들에서 표명되었던 예상들이 완전히 들어맞게 됨으로써, 또 이전에는 동맹이 단지 비밀스럽게만 선전하던 오늘날의 사회 상태에 대한 견해가 이제 인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어 시중에서 공공연히 설파됨으로써 동맹은 자신을 입증하였다. 동일한 시기에, 이전에는 튼튼하던 동맹의 조직이 현저히 느슨해졌다. 혁명운동에 직접 참가했던 회원의 대부분이 비밀 결사의 시대는 지나갔고 공개 활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몇 소조와 지구들은 중앙 위원회와의 연계를 느슨히 해오다가 점차 완전히 끊어 버렸다. 그리하여 독일에서는 민주주의 당, 즉 소부르주아 당이 점점 더 조직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노동자 당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확고한 받침대를 잃어버리고 기껏해야 개별 지방들에서 지역적 목적을 위해 조직되어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노동자당은 일반적 운동에서는 완전히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지배와 지도 아래 떨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태가 끝장나고 노동자들의 독자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중앙 위원회는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1848/49년 겨울에 특사 요제프 몰을 독일에 파견하여 동맹을 재조직케 한 바 있다. 그러나 몰의 사명은 지속적인 영향을 남기지 못하고 끝났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당시 노동자들이 아직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작년 5월의 폭동[60]으로 인해 몰의 사명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몰 자신은 총을 들고 바덴-팔쯔 군대에 참가하였다가 6월 29일에 무르크 강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를 잃음으로써 동맹은 가장 노련하고 가장 활동적이며 가장 신뢰할 만한 회원 한 사람을 잃고 말았다. 그는 모든 대회와 중앙 위원회에 참가했으며, 이전에도 이미 여러 번 특사 임무를 맡고 떠나 훌륭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1849년에 독일과 프랑스의 혁명 당들이 패배한 후에 거의 모든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런던에 다시 모여 새로운 혁명 역량을 보충하고 새로운 열의를 갖고서 동맹의 재조직을 서둘렀다.
 동맹의 재조직은 특사[61]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으며, 중앙위원회는 바로 이 시점에 특사를 파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점은 새로운 혁명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며, 따라서 또다시 1848년처럼 부르주아지에게 이용당하고 그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노동자 당이 가능한 한 조직적으로, 가능한 한 일사분란하게, 가능한 한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형제들, 우리는 이미 1848년에 여러분에게 말하였다. 독일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이 곧 지배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고 또 지배권을 장악하자마자 새로이 획득한 자신들의 힘을 노동자들에게 행사할 것이라고. 여러분들이 보아 온 바와 같이 이 말은 적중하였다. 실제로 부르주아들은 1848년 3월의 운동 이후 지체 없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였고, 그 권력은 자산들이 투쟁할 때 동맹자였던 노동자들을 이전의 피억압적 지위로 돌아가게 하는데 이용되었다. 부르주아지는 3월에 제거된 봉건적 당파와 결합하지 않고서는, 결국에 가서 이 봉건적 절대주의 당파에게 지배권을 넘겨주지 않고서는 이런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이제 확실히 혁명운동이 이른바 평화적 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정부의 곤란한 재정 상태로 인해 결국은 자신들에게 지배권을 쥐어 주고 자신들의 모든 이익들을 보장하게 될 조건들을 확보해 놓았다. 부르주아지는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폭력적 방책들을 써서 인민의 증오를 불러일으킬 필요조차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폭력적 조치들은 이미 봉건적 반혁명파에 의해서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러한 평화적인 과정을 밟지 않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발전을 촉진하게 될 혁명이 가까이에 와 있다. 프랑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적 봉기로 말미암아 일어나든 또는 혁명의 바빌론[빠리]에 대한 신성 동맹의 침범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든 어쨌든 혁명은 가까이에 와있다.
 그런데 1848년에 독일의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이 인민에 맞서서 했던 역할, 즉 그와 같은 배신자의 역할을 다가올 혁명에서는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이 답습할 것이다. 이들은 현재 반정부파 내에서 1848년 이전의 자유주의 부르주아들과 동일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당파, 즉 노동자들에게 이전의 자유주의 당파보다 더 위험한 민주주의 당파는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I. 대부르주아지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부분으로서, 봉건주의와 절대주의를 즉각적으로 완전히 전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부분. 이 분파들이 대표하는 것은 이전의 베를린의 협정자들, 납세 거부자들이다[62]
 II. 민주주의적-입헌적 소부르주아들. 지금까지의 운동 과정에서 이들이 추구한 주요 목적은 어느 정도 민주주의적인 연방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대표자들인 프랑크푸르트 의회 좌파는,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슈투트가르트 의회[63]는, 그리고 제국 헌법 전쟁에서 그들 자신은 이러한 연방 국가의 건설을 열망하였다.
 III. 공화주의적 소부르주아들. 이들의 이상은 스위스 연방 공화국과 같은 독일 연방 공화국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소자본에 대한 대자본의 압박, 소부르주아에 대한 대부르주아의 압박을 철폐한다낸 악의 없는 소망을 품고 있다 해서 현재 자신들을 적색파 또낸 사회 민주주의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 분파의 대표자들은 각종 민주주의적 회의와 위원회의 회원들, 민주주의적 단체의 지도자들, 민주주의적 신문들의 편집자들이다. 
 이 모든 분파들은, 현재 프랑스의 공화파 소부르주아들이 사회주의자들이라고 자칭하고 있듯이 자신들이 패배하고 난 지금 자신들을 공화파 또는 적색파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뷔르템베르크나 바이에른 등지에서처럼 아직 자신들의 목적을 입헌적 방식으로 추구할 기회가 있는 곳에서는, 자신들의 낡은 공문구를 고집할 기회, 자신들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행동에 의해 증명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당파의 명칭이 달라졌다고 해서 노동자들에 대한 이 당파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명칭의 변화는 다만 현재 이 당파가 절대주의와 연합한 부르주아지에 대항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에 의지해야 함을 증명할 뿐이다.
 독일의 소부르주아-민주주의 당파는 매우 강력하다. 이 당파는 도시의 대다수의 부르주아적 주민, 즉 소상공업자, 수공업 장인만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농민들도, 그리고 도시의 독자적 프롤레타라아트가 자신들이 의자할 데라는 것을 아직 알아채지 못한 한에서의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도 이 당파를 따라가고 있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당파에 대한 혁명적 노동자 당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 혁명적 노동자 당은 자신이 정복하고 하는 분파에 대항할 때에는 이들 민주주의 당파와 공동 보조를 취한다 ; 이들 민주주의 당파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발걸음을 멈추고자 할 경우에는 언제나 이들 민주주의 당파에 반대한다.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사회 전체를 변혁할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회 상태가 변화되어 현존 사회가 가능한 한 자기들아 견딜 만하고 살기 편하게 되는 것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엇보다도 관료제를 축소하여 국가의 지출을 줄일 것을, 그리고 주요 세금을 대토지 소유자들과 부르주아들에게 전가할 것을 요구한다. 다음으로 그들은 자신들과 농민들이 자본가 대신에 국가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대부할 수 있도록 공공 신용 기관을 설치하고 고리 대금업 단속법을 제정함으로써 소자본에 대한 대자본의 압박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 그 다음으로 그들은 봉건주의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농촌에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들을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을 실시하기 위해 그들은, 입헌적이든 공화제적이든 간에 자신들과 자신들의 동맹자인 농민들을 다수파로 하는 민주주의적인 국가 제도를 필요로 하며, 자치제 재산에 대한 직접적 감독권과 현재 관료들에 의해 행사되고 있는 일련의 기능들을 자신들의 손에 쥐어 주는 민주주의적 지방 자치제를 필요로 한다.
 자본의 지배와 급속한 증식은 부분적으로는 상속권을 제한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업을 국가에 이관함으로써 억제되어야 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임금 노동자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다만 이들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한층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기를 이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은 희망한다. 그들은 이들 노동자들의 일부를 국가가 고용함으로써, 또 여러가지 자선 조치들을 실시함으로써 이러한 것을 달성하려고 한다. 요컨대, 그들은 많건 적건 은폐된 자선으로 노동자들을 매수하려 하고, 노동자들의 처지를 일시적으로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그들의 혁명먹 힘을 파괴하려 한다. 여기에서 열거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파의 요구들을 이 파의 모든 분파들이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파 내부의 소수 사람들만이 이 요구들 전체를 자신들의 확실한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이 파의 개별적 인물들이나 분파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더 나아갈수록 이 요구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게 될 것이며, 상술한 요구들을 자신의 강령이라고 보는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마도 혁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요구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요구들은 결코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을 만족시킬 수 없다.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은 기껏해야 상술한 요청들을 실현한 정도에서 되도록 빨리 혁명을 결말짓고자 한다. 반면에 우리의 이익과 과제는 모든 크고 작은 유산 계급들이 지배적 지위에서 배제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들의 연합이 한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지배적인 나라들에서 충분히 발전하여 이 나라들애서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의 경쟁이 종식되고 적어도 결정적인 생산력들이 프롤레타리아의 수중에 집중될 때까지 혁명이 영속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적 소유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없애 버리는 것이고, 계급 대립을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계급들을 폐지하는 것이며, 현존의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후의 혁명의 발전 과정에터 소부르주아 민주주의파가 당분간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파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 특히 동맹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
 1.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억압받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이 지속될 때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2. 그들이 우위를 점하게 될 바로 다음의 혁명 투쟁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3. 이 투쟁이 끝난 후, 전복된 계급들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하여 그들이 우세를 점하게 될 때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1.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이 도처에서 억압받고 있는 지금,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반적인 단결과 화해를 설교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손을 내밀고 있으며 민주주의적 당파 내의 모든 색조들을 포괄하는 거대한 반정부 당을 설립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를 은폐하는 일반적인 사회-민주주의적 문구들이 횡행하는 당 조직, 그들이 아끼는 평화를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들은 제기하지 말아야 할 그러한 당 조직으로 노동자들을 밀어 넣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한 연합은 오직 그들에게만 이롭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전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렵사리 얻은 자신의 독자적인 지위를 상실할 것이며 또다시 공식적 부르주아 민주주의파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연합은 아주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특히 동맹은 박수 갈채를 보내는 합창단이 되어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게 봉사하는 처지로 또다시 전락할 것이 아니라, 공식적 민주주의자들과 나란히 서서 비밀 조직이든 공개 조직이든 간에 노동자 당의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고 각 소조가 노동자 결사들의 중심점과 핵심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노동자 결사들에서 부르주아의 영향력을 떨쳐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와 이해들에 관해 토론하도록 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게 동등한 힘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서 맞서게 하는 그러한 제휴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얼마나 불성실하게 나오는가는 예를 들어 브레슬라우의 민주주의자들이 잘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관지 《신 오더 신문》에서 자신들이 사회주의자들이라고 이름붙인 독자적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을 맹렬히 공격한다. 공동의 적을 상대로 투쟁할 경우에는 어떠한 특별한 연합도 필요하지 않다. 직접 그러한 적을 상대로 투쟁할 경우가 되면 즉각 양 당파의 이해는 일시적으로 일치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미래에도 이처럼 잠깐 동안 염두에 둔 결합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모든 충돌들에서 그랬듯이, 다가올 유혈 충돌에서도 당연히 노동자들이 그들의 용기, 과단성, 희생으로 주로 승리를 쟁취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 투쟁에서도 소부르주아 대중은 오랫동안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유유부단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승리가 결정적인 것으로 되면 즉각 그 승리를 자신들이 독점하고는, 노동자들에게 진정하고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가라고 촉구하면서 이른바 과도한 행동을 막으려 애쓰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의 열매를 갖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이러한 행동을 막을 힘이 노동자들에게는 없다. 그러나, 이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무장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또 그들에게 일정한 조건들을 접수하게 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지배가 애초부터 멸망의 씨앗을 품도록 만들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가 그들의 지배를 나중에 아주 쉽게 밀어내도록 만들 힘은 있다. 충돌하고 있는 도중에도, 그리고 투쟁 직후에도 노동자들은, 폭동을 진압하려는 부르주아의 책동에 맞서는 활동을 다른 어떤 일보다 앞서서 최대한 벌여 나가야 하며, 민주주의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금 입에 올리고 있는 테러리스트적 공문구를 시행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승리를 거두자마자 직접적이고 혁명적인 흥분이 다시 억제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반대로 흥분을 최대한 오래 지속시켜야 한다. 이른바 과도한 행동, 즉 증오하는 개인이나 증오심밖에 불러일으키지 않는 공공 건물에 대한 인민들의 복수 같은 사례들을 막아 서기 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사례를 허용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지도권 자체를 손에 넣어야 한다. 투쟁 중에도 투쟁 후에도 노동자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요구들과 나란히 자기 자신들의 요구들을 내걸어야 한다. 그들은 민주주의적 부르주아들이 정부를 장악할 준비를 하자마자 노동자들을 위한 보장을 요구하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폭력적으로라도 그 보장을 쟁취해야 하며, 또 일반적으로 새 통치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양보들과 약속들을 하도록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이렇게 하는 것이 새 통치자들의 체면을 깎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그들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새로운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나타냄으로써, 승리에 대한 도취라든가 가두 투쟁의 승리 후 으레 전개되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열광을 일반적으로 자제해야 한다. 그들은 노동자 참사회의 형태건 노동자 의회의 형태건 간에, 그리고 노동자 클럽을 통해서건 노동자 위원회를 통해서건 간에 즉시 자신들의 혁명적 노동자 정부들을 새로운 공식적 정부들에 나란히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들로 하여금 즉각 노동자라는 뒷받침대를 상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신들이 노동자 대중 전체가 지지하는 기관들의 감시와 위협 아래에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 승리한 그 순간부터, 타도된 반동 당파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불신을 보낼 필요가 전혀 없고 지금까지의 동맹자에 대해서, 즉 공동의 승리를 혼자서 차지하려 드는 당파에 대해서 불신을 보내야 한다.
 2. 그러나, 승리한 그 순간부터 노동자들을 배신하기 시작하는 이 당파에 정력적이고도 위협적으로 대항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들은 무장되어 있어야 하며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 라이플 총, 소총, 대포, 탄약 등으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를 즉각 무장시켜야 하며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던 옛 시민 방위대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저지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라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뽑은 지휘관과 총참모부를 가진 프롤레타리아 방위대를 독자적으러 조직하고 그것을 국가 권력의 지휘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성취한 혁명적 지역 의회의 지휘 아래 두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국비로 고용되어 있을 경우에 그들은 반드시 무장해야 하며, 자산들이 뽑은 지휘관을 가진 특별 부대나 프롤레타리아 방위대의 일부로서 자신을 조직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누가 어떤 구실을 갖다 댄다 하더라도 결코 무기와 탄약을 손에서 놓아서는 안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무장을 해제시키려는 시도가 있기만 하면, 필요할 경우 폭력을 써서라도 그러한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영향력을 분쇄하는 것, 노동자들을 독자적인 무장조직으로 편성하는 것,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지배를 가능한 한 곤란하도록 만들고 체면이 땅에 떨어지게 만드는 그러한 조건들을 관철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이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이 당면한 봉기의 과정에서, 그리고 그 후에 유념해야 할 주요 사항들이다.
 3. 새로운 정부들이 어느 정도 공고해지자마자 노동자들에 대한 이 정부들의 투쟁은 시작될 것이다. 이때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에 힘으로 맞설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클럽을 통해서 독자적으로 조직되고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현존 정부들이 전복된 후에, 가능성이 열리자마자 중앙위원회는 독일로 가서 클럽들을 집중시키는 데 필요한 의안들을 대회에 제출할 것이다. 조금밖에 안되는 것일지라도 각 지방의 노동자 클럽들의 연합체를 신속히 조직하는 것은 노동자 당을 강화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사항들 가운데 하나이다 ; 현존 정부들이 전복된 직후의 결과는 국민 대의 기관의 선거가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때 다음의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 :
 I. 지방 당국과 정부 위원들의 술책과 구실에 의헤 노동자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결코 없도록 할 것 ;
 II.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입후보자들과 나란히 노동자 입후보자들을 내세울 것. 후보자는 가능한 한 동맹원들 가운데서 내세우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하여 그들이 당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 입후보자가 당선될 가망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입후보자를 내세워야 한다. 자신들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하며 자신들의 혁명적 입장과 자신들의 당을 관점을 공공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이때 노동자들은 예를 들어, 그렇게 하면 민주주의 당파를 분열시키며 반동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줄지 모른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허튼 소리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모든 공문구들은 결국 프롤레타리아트를 기만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들이다. 그러한 독자적인 진출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당이 이루게 되는 진전은 몇 명의 반동 분자들이 대의 기관에 들어감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불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만일 민주주의파가 처음부터 단호하게 테러리즘적으로 반동에 맞섰다면,  선거에서 반동배가 끼칠 영향력이란 이미 애초부터 절멸되어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노동자들과 충돌하게 되는 최초의 문제는 봉건제의 폐기의 문제일 것이다 ; 소부르주아들은 제1차 프랑스 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봉건 영지를 농민들에게 자유 재산으로 나누어 줄 것이다. 즉, 그들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를 온존시키고 소부르주아적 농민 계급을 형성하려 할 것이다. 이 농민 계급은 지금 프랑스의 농민들처럼 가난이 심해지고 빚이 늘어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러한 계획에 반대해야 한다. 그들은 몰수한 봉건적 소유를 그대로 국유지로 만들어 그것을 노동자 집단 농장으로 전화시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 노동자 집단 농장을 연합 농촌 프롤레타리아트가 대규모 경작의 모든 이점들을 이용하여 경작한다면, 동요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들의 한가운데에서 공동 소유의 원리가 즉각 확고한 기초를 얻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자들이 농민들과 연합하듯이 노동자들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와 연합해야 한다. 게다가 민주주의자들은 직접 연앙 공화국을 획책하든가, 혹은 어떻게 해도 단일한 불가분의 공화국을 회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적어도 지역들과 지방들을 가능한 한 독자적이고 독립적이게 만들어 중앙 정부를 마비시키고자 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계획에 대항하여, 단일한 불가분의 독일 공화국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공화국 내에서도 권력을 국가 권력의 수중에 아주 철저하게 집중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지역의 자유니 자치니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요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제거되어야 할 중세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으며 또 타파되어야 할 지역적이거나 지방적인 완고함이 많이 남아 있는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각각의 촌락과 도시와 지방들이, 중앙에서 출발해야만 그 모든 역량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것인 혁명 활동의 새로운 걸림돌로 되는 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허용될 수 없다. -- 독일인들이 동일한 진보를 목표로 하면서도 각각의 도시, 각각의 지방에서 따로따로 싸워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또다시 나타나는 일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 이른바 자유로운 지방 자치제 제도를 통해서, 현대적 사적 소유보다 낙후한 것이며 도처에서 필연적으로 이러한 현대적 사적 소유로 해체될 소유인 공동체 소유를 영구화하거나, 이 공동체 소유로부터 야기되는 가난한 공동체와 부유한 공동체 사이의 분쟁을 영구화하며, 국가 시민권과 나란히 서서 노동자에 대한 술책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방 자치제 시민권을 영구화하는 것도 결코 허용될 수 없다. 1793년에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독일에서도 아주 엄격한 중앙집권화를 실현하는 것은 진정한 혁명적 당의 임무이다.1)
 이미 살펴본 것처럼, 바로 다음에 전개될 운동에서 민주주의자들은 지배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며 이들은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인 방책들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서 어떤 방책들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운동의 시작부터 직접 공산주의적 인 방책들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
 1. 민주주의자들을 강제하여, 되도록 여러 방면에서 지금까지의 사회 질서를 공격하고 이 질서의 규칙적인 진행을 방해하게 하여 민주주의자들 자신의 체면을 깎아 내리도록 할 수 있으며 또한 되도록 많은 생산력들, 운송 수단, 공장, 철도 등등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키도록 할 수 있다.
 2. 노동자들은 민주주의자들이 매번 혁명적이지 않고 다만 개량적인 형태로 내놓게 될 제안들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가서 그러한 제안들을 사적 소유에 대한 직접적 공격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예컨대 만일 소부르주아들이 철도와 공장들을 사들이자고 제안하면 노동자들은 반동 분자들의 재산인 그 철도와 공장들을 국가가 거참없이 무상 몰수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민주주의자들이 비례세를 제안하면 노동자들은 누진세를 제안한다 ; 민주주의자들 자신이 적당한 정도의 누진세를 제의한다면 노동자들은 대자본이 누진세를 무느라고 망해 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급속히 높아지는 누진율이 적용되는 누진세를 고수한다 ; 민주주의자들이 국채의 조정을 요구한다면 노동자들은 국가의 파산 선고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요구들은 언제나 민주주의자들의 양보와 방책에 준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비교적 긴 혁명 발전의 과정을 경과하지 않고서는 지배권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계급 이익을 관철시킬 수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이번에는 앞으로 다가올 혁명극의 제1막이 프랑스에서의 그들 계급의 승리와 때른 같이 할 것이며 이로써 그 제1막이 크게 촉진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 승리를 이룩하기 위해 노동자들 자신이 최고의 노력을 기울어야 할 일이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눈을 떠야 하며 되도록 빨리 자신들의 독자적인 당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또 일순간이나마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의 기만적 공문구에 현혹되어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독자적인 조직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전투 구호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 영속혁명

1850년 3월, 런던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1) 1885년 판에 엥겔스가 붙인 주 : 이 부분이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에 와서 상기시켜야 겠다. 프랑스의 중앙 집권적 행정 기구는 대혁명에 의해서 도입되었으며 특히 국민 공회가 그 기구를 왕조파 및 연방주의파의 반동과 외적에 싸워 이기기 위한 볼가피하고 결정적인 무기로서 운용하였다는 것이 당시에는 -- 보나빠르뜨파와 자유주의파의 역사 위조가들 덕분에 -- 틀림없는 사실로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다음의 사실은 주지의 것이 되어 있다. 브뤼메르 18일[64]에 이르는 혁명 과정 전체에서 현, 군, 구역 등의 모든 행정 기구들은, 행정 구민 자신들에 의해서 선출되어 일반 국법의 범위 내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였던 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 아메리카의 그것과 유사한 이 지방적이고 지역적인 자치는 혁명의 매우 유력한 지렛대가 되었으므로 나뽈레옹은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후에 서둘러서 이 자치제를,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애초부터 순전히 반동의 도구였던 지사제로 대체하였다는 사실. 그러나 지방적이고 지역적인 자치가 정치적이고 국민적인 중앙집권과 모순되지 않듯이 반드시 협애한 주 또는 구역의 이기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데, 이런 이기주의는 현재 스위스에서 매우 고약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남독일의 연방주의 공화파는 1849년에 독일에서 이러한 이기주의를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58] 《동맹에 보내는 중앙 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1848/49년 혁명의 경험들로부터 독일에서의 독자적 노동자 당 형성에 대한 기본적 교의를 이끌어 냈다. 그들은 노동자 당이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모든 정치적 융합 기도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조직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독자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시에 그들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노동자 당의 관계에 관한 전술적 기본 원리들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노동자 당이 언제나 운동을 더욱 촉진시키고 완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변혁을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동맹에 보내는 중앙 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는 1850년 3월 24일에 작성되어 공산주의자 동맹의 회원 몇 사람이 체포되면서 압수된 이 문서는 1851년 6월 말에 《드레스덴 신문》과 다른 부르주아 정기 간행물에 실렸고, 경찰관 베르무트와 슈티버가 발간한 책 《19세기의 공산주의적 모반들》(베를린, 1853-1854년)의 제1-2장에도 실렸다. 엥겔스는 1885년에 맑스의 저작 《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에 대한 폭로》의 새로운 판의 부록으로 이 글을 출판하였다.

[59] 맑스와 엥겔스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최초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당인 공산주의자 동맹을 말한다. 이것은 1847년 의인 동맹과 브뤼셀 공산주의자 연락 위원회로부터 출범하여 1852년까지 존속하였다. 동맹은 그 강령으로 보나 그 구성으로 보나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조직이었으며, 따라서 국제 노동자 협회의 선구자였다. 동시에 동맹은 독일 노동자의 당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주로 수공업 장인들이었던 독일 노동자들이 회원의 다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60] 1849년 5/6월 동안에, 1849년 3월 28일 말에 결정된 제국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치러진 제국 헌법 전쟁을 말한다. 이것은 1848/49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최후의 보루였다. 이 전쟁의 성격과 경과에 관해서는 여기에 참가한 엥겔스의 저작 《독일 제국 헌법 전쟁》과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을 보라.

[61] 특사는 하인리히 바우어였다.

[62] 맑스와 엥겔스는, '왕권과의 협정을 통한' 헌법의 완성을 위하여 1848년 5월에 베를린에서 소집된 프로이센 국민 의회의 대의원들을 협정자들이라고 불렀다.
 1848년 11월에 있었던 프로이센의 반혁명의 공격을 소극적인 저항으로, 무엇보다도 납세 거부로 맞서려고 했던 프로이센 국민 의회의 대의원들은 납세 거부자들이라고 불리었다.

[63] 프랑크푸르트 국민 의회는 1848년 5월 18일에 바오로 성당에서 개회되었다. 이 의회는 보수파와 상당수의 자유주의적 의원들이 의회를 떠난 다음인 1849년 6월 초에 회의 장소를 슈투트가르트로 이전하였다. 1849년 6월 18일에 이 '잔해 의회'는 뷔르템베르크의 군대에 의해 해산되었다.

[64] 브뤼메르 18일(1799년 11월 9일)에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를 통해 집정 내각을 전복시키고 제1집정관이라는 이름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맑스는 "브뤼메르 18일의 재판"이라는 말로 1851년 12월 2일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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