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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26 22:09
프리드리히 엥겔스(1835년 가을)_레닌
 글쓴이 : webmaster
조회 : 2,253  

프리드리히 엥겔스[1]
 
1835년 가을에 쓰여짐
1896년 문집 라보트니크[2]. 1-2호에 처음 출간됨
 
무엇이 이성의 타오르는 불길을 꺼지게 했는가!
무엇이 심장의 고동을 멈추게 했는가![3]
 
프리드리히 엥겔스(Frederick Engels)189585(신력) 런던에서 숨졌다. (1883년에 숨진) 그의 벗 칼 맑스 이후, 엥겔스는 전 문명 세계에서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위대한 학자이자 교사였다. 맑스와 엥겔스가 숙명처럼 만나게 된 때부터, 두 벗은 공동의 대의에 혼신의 정열을 다 쏟았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행해온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당대의 노동계급운동의 발전을 위한 맑스의 가르침과 연구가 지닌 중요성에 대해 명료히 알지 않으면 안된다.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계급과 그 계급의 요구란 현재의 경제체제가 낳은 필연적 산물이며, 이와 동시에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서로를 필연적으로 창출하고 조직한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현재 인류를 억업하는 악에서부터 장차 이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숭고한 정신을 가진 개개인들의 선의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직화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임을 입증하였다. 그들의 과학적인 저술들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는 공상가들의 창작물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생산력의 발전이 가져다 준 필연적인 결과이자 궁극적 목표임을 설명해낸 최초의 인물들이었다. 지금까지 기록된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자 특정 사회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와 승리의 연속된 역사였다. 그리고 이는 계급투쟁과 계급지배의 토대사적 소유 및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성의 소멸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는 이러한 토대의 파괴를 요구하며, 그러므로 조직화된 노동자의 의식적인 계급투쟁은 토대에로 향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모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두 벗[레닌은 맑스와 엥겔스를 이렇게 부르고 있다-역자]이 그들 시대의 사회주의적 저술활동과 사회운동에 참가했던 40년대에 있어서 이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재능이 있든 없든, 정직하든 정직하지 못하든,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과 부르조아지의 이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적 대립을 보지 못하는 왕과 경찰과 성직자들의 전제정치에 대항하는 투쟁에 열중했던 많은 인민들이 있었다. 이들 인민이 하나의 독립된 사회세력으로서 행동하는 노동자들의 사상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달리, 당시에는 다만 당대의 사회 질서가 가진 불의에 대해 지배자와 통치계급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고, 그렇게 되면 지구상의 평화나 일반적 복지가 쉽게 세워지리라고 생각하는 많은 공상가들과 그러한 몇몇 천재들이 존재하였다. 그들은 투쟁없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결국 그 당시의 거의 모든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의 벗들은 대체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단지 하나의 종기로만 여겼을 뿐 아니라 산업의 발달과 함께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혐오스런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는 산업의 발달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또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서게 할 수단을 찾아 헤멨다. 맑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에 대하여 그 당시 유행하던 두려움을 결코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전적으로 희망을 걸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혁명적 계급으로서의 그들의 힘은 더욱 강대해지고, 사회주의의 도래는 더 가깝고 더 한층 가능하게 된다. 노동계급에게 바쳐진 맑스와 엥겔스의 공헌은 다음의 몇 마디 말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스스로에 대해 자각하고 또 그 계급의 의식을 갖도록 가르쳤으며 공상을 과학으로 대체하였다.
이것이 엥겔스의 이름과 생애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이유이며 우리의 모든 출판물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이 논문 모음집에서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두 교사 중 한 사람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생애와 저작을 개괄하는 이유이다.
엥겔스는 1820년에 프러시아제국의 라인 지방에 자리한 바르멘(Barme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방직공장 주인이었다. 1838년 엥겔스는 집안 환경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브레멘에 있는 한 상점 점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상점일은 엥겔스가 자신의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절대주의와 관료의 횡포를 증오하였다. 철학 학습은 그를 한층 심화시켰다. 그 당시에 헤겔의 교의는 독일 철학을 지배하였고 엥겔스는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비록 헤겔 자신은 절대주의적인 프러시아 국가의 찬미자이자 베를린 대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었지만, 헤겔의 교의는 혁명적이었다. 인간 본성과 그 권리에 대한 헤겔의 신념과, 우주는 변화 발전의 지속적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헤겔 철학의 근본 명제는 베를린 철학자[헤겔-역자]의 몇몇 제자들현존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이러한 상황에 대한 투쟁, 즉 잘못되고 널리 퍼진 현존하는 악에 대항한 투쟁 역시 영원한 발전의 보편 법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상으로 인도하였다. 모든 사물이 발전한다면, 하나의 제도가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면, 어째서 프러시아 왕의 절대주의나 러시아의 짜르, 거대한 다수의 희생을 기초로 한 하찮은 소수의 부와 인민에 대한 부르조아지의 지배가 영구히 계속되는 것인가? 헤겔의 철학은 정신과 사상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관념론적이었다. 그것은 정신의 발전으로무터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회적 관계의 발전을 끌어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발전의 끊임없는 과정에 관한 헤겔의 사상을 받아들인 반면*(맑스와 엥겔스는 그들이 지식인으로 성장하는데에 있어서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들 특히 헤겔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종종 지적하였다. 엥겔스는 말한다: “독일의 철학없이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탄생되지 않았다.”) 관념론자의 선입관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생명(life)에 관심을 돌려, 자연의 발전에 관한 해명은 정신의 발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정신의 발전에 관한 해명이 자연과 물질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헤겔 및 다른 헤겔주의자들과는 달리 맑스와 엥겔스는 유물론자였다. 그들은 세계와 인류를 유물론적으로 고찰하면서, 모든 자연 현상의 근저에 물리적 원인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발전 역시 물질적 힘과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조건지워진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인간 욕구의 충족에 요구되는 물질의 생산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존한다. 그리고 사회 생활의 모든 현상과 인간의 열망, 사상 및 법률은 이들 상호관계 속에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생산력의 발전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사회관계를 생성시키지만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생산력의 발전이, 대다수의 부를 박탈하여 하찮은 소수의 손으로 집중시키고 있음을 본다. 생산력의 발전은 현 사회질서의 기초인 소유를 폐지하고 사회주의자들 스스로가 설정해 온 바로 그 목표를 향해 생산력 자체를 진전시킨다[생산력의 발전 그 자체가 사회주의자들의 목표인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간다역자).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해야할 일은, 어떠한 사회세력이 현 사회에서 점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로부터 사회주의를 일으키는데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직시하는 것이며, 그 세력에게 자신의 이해와 자신의 역사적 임무에 대한 의식을 전해 주는 것이다. 이 세력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엥겔스는, 1842년에 그의 아버지가 주주인 한 상사(商社)에 들어가 정착했던 영국의 산업 중심지인 멘체스터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엥겔스는 공장 사무실에 앉아 있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철창처럼 갇혀서 살고 있는 슬럼가를 방황하면서 그 자신의 눈으로 노동자들의 가난과 비참함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 관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관해 그전에 나온 모든 것을 읽었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공식적인 문서들 전부를 주의깊게 파헤쳤다. 이러한 연구와 관찰의 결실이 1845년에 발표된 영국에서 노동계급의 상태(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라는 책이었다. 우리는 이미 엥겔스가 영국에서 노동계급의 상태를 집필함으로써 보답한 최대의 공헌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였다. 엥겔스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고통에 대해 묘사하였고 그들을 도울 필요성을 지적하였다.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단지 고통받는 계급만은 아니라고 말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사실, 프롤레타리아트를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내몰고 그들이 그들의 해방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의 비참한 경제적 상태이다. 또한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스스로를 도울 것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운동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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